깊이 뭍힌 행복

작성자:     작성일시: 작성일2007-07-14 13:00:41    조회: 3,314회    댓글: 0
"사랑을 하다 보면 슬픔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도 사람들은 사랑을 못해 안달이다. 약간의 기쁨, 그 불확실한 기쁨을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이 슬픔에 젖는다 해도 능히 그것을 감수한다." (이정하의 "내가 길이 되어 당신께로" 중)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느끼는 슬픔이 불행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사랑은 우리에게 행복 만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었다"라고 시인은 절규한다. 그러나 "행복"은 그저 히히덕 거리며 웃는 값싼 즐거움이 아닌 것을 . . . . 오늘 누릴 수 있는 기쁨은 저 높은 곳, "소망"이라는 이름을 가진 미래의 영역의 그림자이며 그곳에서 떨어지는 아침이슬 같다는 것, 그러므로 그 기쁨의 자취에는 항상 애절한 갈망이라는 일종의 비애가 서려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않된다. 아마 시인도 그것을 조금은 알아 버렸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썼다.

"금전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곧 환멸을 느껴야 했다. 그가 금전으로 산 것은 행복이 아니라 한때의 쾌락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지위로 행복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곧 실망하고 말았다. 그가 지위로 차지한 것은 한때의 영화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명예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또한 실패했다. 그가 명예로 누린 것은 행복이 아니라 한때의 허영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복은 순간적인 즐거움이나 슬픔 그 자체를 놓고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 행복한 사람의 얼굴에 자리잡은 주름살들이 말해주듯이 그 안에는 수많은 눈물과 고통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고, 아울러 그토록 달콤했던 진실된 위로와 동행의 기쁨이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행복은 깊이 뭍힌 보물과 같이 얇팍한 삽질 정도로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정말 죽일 수 없는 선한 사람의 핏값을 주고서라도 만들어 내고 말겠다는 절대자의 비장함이 요구되었을 정도로 진정한 행복은 깊고, 고귀하고, 영구한 것이다. 이 행복을 만난 사람이라면, 왜 값싼 조미료 같은 맛에 감동을 받겠는가? 아마도 인생을 정말 묵직하게 누리며 살아갈거다. 그래서 아파도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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