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삶 속에서 만나지는 일들을 언제나 자신의 현실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모르는 척하거나 애써 외면하며 살아온 나를 보게 된 밤이었다.
교회단체가 주관하는 큰 집회에도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서 힘들어하는데 밀알의 밤 음악회에는 좌석이 부족해서 통로 바닥까지 앉을 자리가 없는 대성황 그 자체였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을까? 그것은 강도 만난 자에게 있어야 할 사마리아인들이 아직도 많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에게는 이웃이 필요하다. 또 나를 이웃으로 얻기 위해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땅에서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 당사자만의 고통이 아니라 그 가족 모두의 고통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동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실제로 도와 주기도 한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 해 보면 그저 한 번 도와 주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그들의 이웃이 되는 것은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방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방인이다. 우리와 분명 다르게 보인다.
그들의생긴 모습이 다르고, 때로는 언어가 달라서 이방인처럼 보인다면 그들은 바로 우리가 책임져야할 선교의 대상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밀알 선교단의 이사로 있으면서 우리 교회로 배당 받은 팔아야할 입장권이 100장이었다. 그런데 단 2장만 팔렸다. 표를 들고 다니면서 성도들에게 권하면 한 두장쯤은 다 구입 해 주시겠지만 그것이 구제하는 마음보다는 선교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한 것을 후회 하게 되었다. 표를 팔지 못해서가 아니다. 나는 밀알선교단의 사역이 얼마나 중요하고 좋은지 안다. 좋은 것은 때로 강권해서 알려야 하는데 그렇게 못했다. 아내 조차도 피곤하다고 가기 싫어해서 나만 가서 은혜 받은 것이 후회 된다는 말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성찬식을 보여지는 말씀 선포라 한다. 그런데 밀알의 밤을 통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장애를 갖고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불편할 뿐이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데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을 뿐아니라 바로 그런 현실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가신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0년 전에 이땅에 오셔서 장애인들과 함께 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로 엘렌 니콜스라는 자매의 간증을 통해서 보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아로 부모에게서 버림 받은 엘렌은 4살 때 미국의 맹인부부에게 입양 되어졌다. 이 가족은 다른 입양아들 모두가 시각장애를 갖고 있어서 온 가족이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들이다. 그런 가정에 입양되어서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 힘든 갈등의 시간을 보냈는데, 버림 받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그것은 "부모가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놓아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고백에는 나의 눈에서도 주체할 수 없이 은혜의 눈물이 흘렀다. 우리는 너무나 현실에 집착하여 나의 것을 내어 주기에 인색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다 적극적으로 교우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권했었더라면 이라는 후회가 막심하다. 정말 너무나 은혜로운 음악회였다.
이 밤 뿐만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밀알선교단은 장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것이다. 가지지 않은 자가 어떻게 줄 수 있겠는가? 가진 자가 은혜를 배풀 수 있다면, 아니 내가 줄 수 있는 자라면 나도 가진자이다. 내가 가진 것으로 나보다 더 필요한 자에게 나누어 주는 이웃이 되기를 우리 모두에게 소원해 본다. 앞으로 우리 교회도 필라밀알선교단을 후원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