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8]

작성자:     작성일시: 작성일2007-02-26 20:39:22    조회: 4,290회    댓글: 8
주일 1부 예배의 기도를 인도하러 교회에 같다가 예배직전에 들었습니다. 내 조카가 교통사고로 죽었답니다. 이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그런데 찬송을 부르는데 목이 매어 나오질 않습니다. 기도를 하고 설교를 듣는데 딴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집에 있어야 할 아내가 울면서 갑자기 교회로 달려왔습니다. 예배 전에 휴대폰 전원을 꺼두어서 통화를 할 수 없어서 아직 모르는줄 알고 쫒아 온 것입니다.
통곡하는 아내를 데리고 조카네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직도 모릅니다. 그 소식을 전해야 하는 내 입이 원망스럽습니다. 황망한 모습으로 울면서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고 통곡하는 외할머니를 봅니다. 병원에 갔던 부모가 돌아오고 함께 통곡합니다. 누가 이 현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혼자 조카의 방을 들어 갔습니다. 어제 저녁 벗어서 방바닥에 그대로 둔 반 바지며 양말이 그대롭니다. 금방 들어와서 다시 주어 입을 것 같습니다. 조카의 냄새도 그대로입니다.
박목사님, 이목사님 그리고 손집사님이 오셔서 위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보고 민망히 여기시고 우신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이 현실 앞에 눈물만 나옵니다. 오후에는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함께 슬퍼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현실로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빠와 둘이서 장례절차에 대해 의논하면서 조카 방에 갔다온 이야기를 하니까 아빠도 같은 마음으로 들어가 봤다면서 오늘은 그 아이의 방에서 자고 싶다고 합니다. 혹시 꿈에라도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친할머니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말합니다. 천국에 간 줄은 알아도 지금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엄마는 어찌살라고.....
오늘은 이 조카를 멀리 떠나 보낼 준비를 하면서 바쁘게 지냈습니다. 먼 하늘만 봐도, 얼음 꽃이 핀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목련 새 눈만 봐도 눈물이 납니다. 에이 나쁜 자식! 하면서 숨죽어 울고 또 웁니다.
다른 식구들 앞에서는 나는 괜찮다고 슬픔을 억누르던 아빠가 홀로 숨어 통곡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통곡 소리에 돌아서서 나도 몰래 속으로 같이 통곡의 눈물을 흘립니다. 이 조카는 내게 조카 이상이었습니다. 아들 같은 조카였습니다. 영어, 중국어, 한국어를 해야 하는 이 아이가 세살 때까지 아빠는 빠바, 이모부는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어릴 때에 욕심을 많이 부린 우리 유니하고 겨우 다섯달 빠른 오빠인데도 같이 자라면서 다 양보하던 착한 오빠였습니다. 아장아장 걸을 때는 양복을 입혀서 드레스를 입은 유니와 같이 교회에도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 아이가 난 아직 준비도 안됐는데 갑자기 떠난 답니다. 그것도 아주 멀리 떠난 답니다. 일년간 상해에 가서 공부한다고 하던 얘가 더 멀리멀리 떠난답니다.
엄마가 내게 부탁을 합니다. 이 아이를 마지막 보내면서 꽃장식은 아이가 좋아했던 색깔로 엄마가 직접하고 싶답니다. 그래서 사진 옆에 둘 꽃은 엄마가 하고, 관 위에 둘 꽃은 엄마랑 잘 아는 분에게 부탁해서 환하고 밝은 색의 꽃을 하기로 했습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이미 이 집을 채우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엄마, 아빠, 이모 그리고 이모부가 함께 기쁨으로 의논했습니다.
우리 이제 이 아이가 천국에 들어 간 것을 축하해주자고..... 그래서 내일 이 아이를 보내면서 우리는 검정조복은 입지말자고.....
아빠가 엄마에게 물어봅니다. 얼마 전에 이 아이가 아빠한테 돈 타 가고 싶어서 사 준 나비넥타이를 맬까하고......
그래 그렇게 할까? 엄마가 대답합니다.
아니야 그건 좀 너무했다. 이모부가 그것은 안된다고 오히려 만류합니다.

천국을 소유한 자만이 알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이 가정에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머지않아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왜? 하나님이 이 아이를 그렇게 일찍 거두어 가셨는지를.....

그래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슬픔을 견딜 수가 없지만,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우리로 능히 감당케 하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오늘도 의지합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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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힘이 들어도 이 아이와의 추억들을 가슴에 안고 살아갈 것입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그 소망의 끈을 붙잡고....
계속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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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말을 잃고 묵묵히 지냅니다.
 사람이 무슨 말로 위로해야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주일 이후 답답한 이런 저런 생각으로 지내자니 심정이 터 질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의 근황을 글로 읽으면서  이미도 그 가정에 위로해 주실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심을 알고 어리석음으로 또 한번 가슴 아파합니다.
부디 하늘의 평강을 누리시길 기도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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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습니다. 수 집사님, 한 집사님, 그리고 손집사님께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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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이가 누워있는 예배당에 가득찼던 그 무거운 눌림이 채 가시기도 전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소망이 가족들과 예배를 함께 드린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셨음을 믿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하오수가 우리 모두에게 주는 또 하나의 기쁜 선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감상적인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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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천에게는 육신이 사라지는 寂滅 (적멸)은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 인생의 속성상 別離(별리)하는 고통과 때때로 견디기 힘든 그리움이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육친과 지인 또한 그럼에도 부모 자녀간의 변고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외에는 어떤 위로도 그저 허공을 돌 뿐입니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慰言(위언)이 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수집사님 한집사님 두분 을 위하여 하나님께  하루속히 두분의심령 이 하나님께서 약속 하신 참소망으로 쾌적 하여지시길 기도 드립니다. 언젠가  난중일기에  이순신 이 독백하기를  " 어제는 우리 백성이왜군에게 죽었다. 오늘은 우리수군에 의해 왜군이 죽었다. 내일은 나도 죽을것이고 그후에는 죽은자도 죽인자도 또 보낸자도 모두 사라지고 무심한 해변만 있을겄이다 " 라는 내용이 기억 납니다. 이렇듯 잠시후에는 모두가 空(공) 으로 될것입니다. 조금 먼저 간자나 조금 후에 간자나 별다를것이 없다는 속절없는 의미 일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든든하고 두렵지않고 외롭지않은것은 우리 하나님께 속한 성도들은 반드시 부활하여 다시 만날수 있는 진리의 소망이 있기때문입니다. 두분 부디 힘내시고 -예수님을 믿는자는 모두 그렇지만- 아드님과 분명히 이루어질 再見(재견)의 소망을 가지고 다시 활력이 넘치시길 기도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自重(자중)하며 받들어서 위로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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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합니다 ID 가 chuck 이라고 올라와 있는데 서 정욱 입니다 실례 를 이해 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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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투가 딱 호꾸풀고 쓴 분의 글이라고 짐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위로와 의미가 우리 가족들에게 임하했습니다. 특히 하오수 부모님의 마음에도 감사가 넘치는 것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