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축복 [3]

작성자:     작성일시: 작성일2008-01-23 05:11:32    조회: 1,720회    댓글: 3
# 한국으로 가다

아버님이 중환자실로 옮기셨다고 한다.
Hospice같은 요양원에서 중환자실로 옮긴다는 것은 거의 운명할 시간이 다가왔다는 것이다.
담당의사는 아버님의 상태로 보아 1주일을 넘기기 힘들지 않겠냐면서
혹시라도 운명할 것 같으면 몇시간 전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비행기편을 알아보았다.  다행스럽게도 하루 전에만 연락주면 좌석은 있다고 한다.
집사람도 가게를 일하시는 분들에게 부탁을 하고 한국으로 가겠다고 한다.
1/16(수) 저녁 비행기로 한국으로 떠났다.
부디 아버님을 만나기 전에 아무런 없기를 기도하면서
한국으로 가는 동안에 거의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집을 나선 지  27시간만에 (비행, 차량이동, 공항 대기 등)
1/18(금) 오전 11시경 아버님이 계신 병원에 도착하였다.

# 중환자실
작년 5월이후 다시 찾은 병원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듯하다.
단지 지난번에는 5층 입원실로 갔지만 이번에는 1층에 있는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의사들 회진이라 당장 면회가 되지 않는다고 하여, 병원 원장을 면담하였다.
현재 아버님의 상태와 어떻게 임종하게 되는지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설명하는 의사나 듣는 자식이나 어차피 다가오는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아주 담담하게 대화를 주고 받았다.

중환자실,  아버님이 누워계셨다.
산소마스크를 하고 오른쪽 눈은 거의 감겨있지만 뜨져있는 왼쪽 눈으로 미국에서 찾아온 아들의 모습을 보아주었으면 하지만
그 희미한 눈동자 안에 아무리 이 아들 모습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도 돌아가시기 전에 귀는 열려있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제법 큰 소리로 '아버지 재범이가 왔습니다.'하고 귀에 대고 얘기했지만 전혀 반응은 없다.
그저 몇 번의 고함같은 큰 소리에 눈만 깜빡할 뿐이다.
손발을 만져 보았다.  너무나 앙상한 느낌이다.  크지 않은 나의  한 손에 아버지의 종아리가 잡힌다.
어제는 다리에 반점도 보이고 차가왔다고 하던데,
오늘은 제법 다리에 온기도 있고 얼굴 또한 따뜻하게 보인다.
비록 산소마스크에 의존하고 있지만 호흡도 내쉬고 하늘을 쳐다보는 모습이 너무나 평안하게 보인다.
이것이 운명하기 전의 모습이라면 "평화스러움" 그 자체이다.
다시 아버님을 세상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게된다면 "엉엉"하고 울 것 같았는데 이 평화스러운 아버님의 모습에 나의 눈물마저도 소리내지 않고 조용히 흐를 뿐이다.

# 그리고 임종
면회실을 나왔다.  의사도 언제인지 알 수 없고 직접 본 우리도 현재의 아버님의 모습에서 언제 임종할 지, 앞으로 며칠은 그렇게 편안하게 지낼 것 같았다.
서울에 있는 남동생은 오늘 저녁에 내려오겠다고 하고 여동생과 나, 집사람이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왔다.
식사후 다시 찾은 아버님은 그 모습 그대로인데, 몸은 더 따뜻한 것 같았다.
간호사는 아버님께서 약간 미열이 있다고 하면서 얼음 찜질을 해야겠다고 하면서 잠시 나가달라고 한다.
아버님이 1년간 계셨던 병실도 가보고 또 공교롭게도 그 병원에 어머님을 돌보고 있는 친구가 있어서 잠시 인사하러 갔다가 1층으로 내려왔다.

갑자기 간호사가 뛰어나오더니 빨리 들어오라고 한다.
아버님을 본 지 10분 만에 다시 들어갔더니, 담당의사가 눈동자와 몇가지를 체크하더니 아무래도 곧 임종하실 것 같다고 하는데 이미 혈압과 맥박 수치를 보여주는 기계에서는 급격히 수치가 떨어지고 있고 아버님의 몸은 점점 차가와지고 있다.

호흡이 점점 희미해진다.  10초, 20초, 30초.....
그 희미한 숨소리마저 나지 않는다.

이렇게 아버님이 운명하셨다.
미국에서 온 큰 아들의 손을 잡고 마지막 따뜻함을 전해주고는
조용히 평안하게 돌아가셨다.  내가 병원에 도착한 지 3시간 만에 돌아가신 것이다.
돌아가시는 순간, 나는 엉엉 울음을 터트릴려고 하였는데 그 울음은 삼켜지고 이것이 하나님이 준 죽음의 축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이것이 왠 축복인가? 
어차피 한번은 돌아갈 운명이라면 이렇게 평안한 임종을 맞이한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육신에게 하나님이 주는 마지막 축복이 아닌가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 장례식
이제는 시신이 된 아버님과 함께 앰블란스를 타고 미리 알아둔 장례식장으로 갔다.
시신 안치실에서 정말 마지막으로 아버지 얼굴을 확인하고는 이제 상주로서 분주하게 장례식을 준비하였다.
이곳 저곳으로 연락을 하고 있는데, 여동생이 건네준 아버지의 수첩에는 너무나 익숙한 글씨로 당신이 돌아가시면 꼭 알려 달라고 하는 지인들의 전화번호가 정리되어 있었다.

거동하기 불편하여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 성당에 다니시지는 못했지만 돌아가시면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해주면 좋겠다는 아버님의 말씀에 따라 성당으로 급히 연락을 하였다.
그 분들과 장례 절차을 상의하고 있는데 벌써 조화가 도착하고 몇몇 친척들은 조문하러 왔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라, 1년간 요양원에서 별 의식없이 지내시다가 떠나가셨기에 많은 조문객들은 큰 울음 소리로 아버님이 떠나가심을 애통해하기 보다는 이제는 좋은 곳으로 가서 평안하게 쉬시라는 마음으로 기원하는 절을 드렸다.

입관하는날, 

이미 영혼은 하늘 나라로 떠나갔고 남은 육신을 관 속에 모셔야 하는데
구부러진 다리와 팔이 펴지지가 않는다. 
뼈밖에 남지 않은 육신, 무리하게 눕힐려다가 부러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운데 무사하게 관속으로 아버님의 육신이 들어갔다.

아버님의 얼굴에는 여전히 평화가 깃들여 있다.

저녁에는 신부님이 오셔서 장례미사를 올렸다.

# 발인
며칠전에는 이곳 부산도 날씨가 제법 추웠다는데 돌아가셨던 날부터 날씨가 좀 포근해졌다.
평소 감상적인 성격을 갖고 있던 아버지의 분위기에 맞추었는지
발인하는 날 아침에는 비가 보슬 보슬 내렸다.

양산 신불산 공원묘지,
경건한 찬송가 속에서 아버님이 땅 속으로 들어가셨다.
3년동안 쓸쓸하게 비어있던 어머님의 옆자리에 이제 아버님이 계신다.
묘지를 내려오는데 어머님과 아버님이 해후하면서
"왜 이제 오셨수?" 
"오래 기다렸지?  함께 하니 얼마나 좋아?"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삼오제
어제가 장사한 지 사흘 째 되는 날, 삼오제를 올리는 날이다.
오늘도 발인 날 처럼 비가 조용히 내렸다.
묘지에는 봉분이 볼록하고 예쁘게 꾸며져, 이제 어머님 산소와 나란히 하였는데 너무 보기가 좋았다.

음식도 차려놓고, 향도 피우고, 술도 한 잔씩 올렸다.
그리고 산소를 내려오기 전, 장남인 내가 대표 기도를 하였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세상 모든일을 다스리시며
인간의 삶과 죽음도 주관하시는 하나님!
무엇보다도 아버님이 평안하게 임종하게 하시고
또 자식들이 모두 모여서 평화스럽게 장례를 치르게 하여주시어 감사합니다.
이제 육신은 이 땅 속에 있지만 그 영혼은 이미 하나님의 품에 안기어
오래간만에 어머님과 기쁜 영혼의 재후를 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동안 세상 속에서 고달팠고 쓸쓸하였고 외로웠던 이 영혼을 달래어
이제는 하늘 나라로 데리고 간, 이것 또한 하나님의 뜻이 있으리라 여깁니다.
하늘 나라에서 항상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남은 이 자식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잘 돌보아 주옵소서.
우리들 또한 아버님의 장례를 치루면서 하나님이 항상 저희 곁에 계신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여 주셨고
이를 계기로 더욱 더 저희들의 신앙이 성숙되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커져가는 자식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이렇게 아버님이 저희 곁을 떠나 하나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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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누구나가  죽음앞에서는  새로운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잔치집에는 가지 않아도 상가집에는 가야한다는 옛 말이 있습니다.
집사님 !
아버님의 장례를 통하여 이별의 축복을 발견하시게 된 것은 참으로 귀한 믿음의 성장입니다. 하늘에 평강을 누리시며 고인의 유산을 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