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 곳에 글을 올리게 됩니다. ^^ 어색하지만... 노고수 입니다.
저희 집 인터넷을 오늘 끊어야 하는 관계로 오늘 마지막 인사를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기쁨의 교회의 지체로 성도님들과 깊은 교제의 시간들이 너무 감사합니다. 기쁨의 교회라는 사역지였기에 얻을 수 있었던 유익이 너무 많지만 그 중에서 두 가지만 언급하고 싶습니다.
1. 성화의 현실감
변화의 범주는 단순히 도덕적이지 않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사실은 더 근본적인 영적인 회복의 역사라는 것을 저의 삶으로 체험하였습니다. 영적인 회복이란 "그리스도를 앎"의 확대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더 깊이 알게됩니다. 단순히 이성적으로 깨닫고 정보를 수집하는 정도가 아닌 전인격으로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면 알수록 그 분의 인자하심에 대한 영적인 인식이 자라날수록 시편기자의 말과 같이 그의 인자하심이 나의 생명보다 월등이 가치있다는 이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주님을 너무 사랑하기에 이전 것을 포기하고 때로는 변하지않을 것 같은 성격도 바꾸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너무 당연하지만 변화의 원동력을 주님을 사랑함에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충만하여지는 것은 오직 오직 말씀과 그 말씀이 나의 삶에서 어떻게 역사하는 지를 경험하는 것에서만이 가능합니다.
성화와 말씀사역의 상관관계에서 온전한 신자로 양육하는 기쁨의 교회 사역은 참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2. 우정
기쁨의 교회를 통해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가장 힘든 시기 저에게 개인적으로 귀한 친구가 되어 준 성도님을 통해 친구의 귀중함을 깨달았습니다. 이민/유학생활을 하다보면 사람이 패쇄적이고 이기적이고 방어적이기 쉽습니다. 나에게 웃음을 찾아 준 친구들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 친구가 있었기에 늘 마음에 여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궁지에 몰린 듯 할때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격려해주고 잘못을 지적해 주는 친구... 그를 통해 우정을 깊이 생각했었습니다. 성경상에서 우정의 대표는 다윗과 요나단이라고 생각많이 하죠. 사실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에게 어떠한 매력을 느끼기 보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존재였습니다. 다윗에게 요나단은 자신을 죽이려는 자의 아들이었고 요나단은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인물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이 어찌 사랑 할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아마도 서로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리고 여화와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되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관계에만이 진정한 우정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격/환경/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여 우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하다는 생각에 복음의 위대함을 경험하였습니다.
기쁨의 교회가 아니었다면 저는 선교를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선교라는 아이디어는 사실 너무 기쁜 마음의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눈물을 씹어야 하는 여러가지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눈물의 가치를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듯합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위치에 있었으나 성도님들께서 말씀으로 삶에서 싸우시는 모습에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연세가 지극하신 성도님들과의 삶의 지혜에 대한 깊은 대화들은 저에게 너무나 큰 자양분이었습니다. 23세 단신으로 미국에 와서 천방지축 내가 기준이 되어 살아 온 저에게 어른을 가까이 할 수 있었던 기회의 기쁨의 교회의 3년이라는 기간은 저에게 너무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신자로서 신앙 성숙이 이루어진 사역기간이었습니다.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시간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경험했던 시간들에 기쁨의 교회라는 이름과 여러분들의 얼굴이 함께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이제 필라를 뒤로하고 떠나갑니다. 사실 너무나 떠나고 싶었던 필라인데... 더운 여름의 답답함이 가슴을 무겁게 하는 것인지 그저 훌훌 가볍게 떠나기가 어렵습니다. 떠나는 마음에 불안도 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가족을 이끌고 간다는 것...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때가 있기도 합니다. 성도님들 온 가족을 이끌고 그 두려움을 이기며 어떻게 미국으로 이민 오셨습니까? 이제야 조금 30대의 한 가장으로서 성도님들의 이민초기의 일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는 듯 합니다.
우리 모두 앞으로의 길에 이러한 두려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겠지만 우리를 지키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도 성령의 역사를 통해 지켜지며 주님 오실 그 날을 기대하며 성도로서 오늘의 두려움과 싸우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려움은 허상이라고... 주님이 이미 승리하셨다고 성령님은 우리에 말씀 하십니다.
온전한 신자는 허약한 자신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허약한 자신에게 말씀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것이라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납니다.
주 안에서 승리하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