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던" 사건과 맞물려 있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외로운 순종의 싸움을 싸우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14:34)고 제자들에게 고백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함께 깨어 있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의 잔이 가능하면 옮기어 질 것을 간구하시며,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순종을 헌신하셨습니다. 세번에 걸쳐 드려진 이 기도는 예수님의 적극적 순종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이와같은 그리스도의 절대적 순종을 우리의 순종으로 크레딧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받으신 고난은 십자가의 고난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드리신 모든 순종 그 자체도 고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예수님의 이런 기도의 순간을 옆에서 보조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기도하기 보다는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2) 유다의 배반은 죄의 밑바닥을 보여 줍니다.
14장에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사실이 하이라이트 되어 있습니다. 겟세마네 기도 이후에 예수님은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유다의 배반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십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은밀한 장소로 무리를 이끌고 온 유다는 예수님께 입을 맞춤으로 그의 배반에 극치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너무나 치졸하고, 비인격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다에 대한 어떠한 인간적인 동정이나 그의 마음의 헤아려 줌이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 순간에 그가 얼마나 잔인하고 비 인간적인 모습으로 사탄의 도구로 전락하였는지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엄청난 심적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죄가 얼마나 악할 수 있는지를 우리 모두에게 상기시켜 주는 장면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죄의 악함에 대해서 눈이 멀면 안될 것입니다.
(3) 제자들은 모두 도주해 버렸습니다.
이 스토리의 결말은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14:50)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 청년이 홑이불만 두르고 예수를 따르다가 무리에게 들켜서 그것마져 내려놓고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했다는 흥미로운 사건 하나를 더해 줍니다. 아마도 이 청년은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여겨집니다. 그 청년 마저 도망하는 것으로 이 순간을 마감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단순이 이 모든 사건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제자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요18:8). 그는 베드로가 순간적 반응으로 칼을 뽑아 휘두르는 것 조차 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더군다나 앞서 예수님은 유월전 만찬에서 제자들이 흩어질 것을 예언하시고,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시기 까지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진정한 보호자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그는 홀로 이 전투의 시간을 맞으셨고, 십자가 상에서 어두움의 세력을 제압하시고 옛 뱀의 머리를 부수셨던 것입니다.
결론: 1. 이처럼 참 구원자 되신 예수님이 우리 편에서 역사하셨고, 오늘도 역사하심을 믿으십시오.
2. 오늘도 예수님은 하늘 지성소에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속죄의 피인 자신의 피를 뿌리며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때 제자들 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외면하고, 힘들수록 기도하기 보다는 잠에 빠져 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직도 주님께서 혼자 기도하시도록 우리는 기도하기를 꺼려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솔하게, 또 철저하게 엎드려서 기도하는 것이 영적으로 깨어있는 상태입니다.
폴리오(소아마비를 일으키는 병균)를 투입함으로 뇌종양을 박멸할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조사가 나왔습니다. 암의 특징은 분명 잘못된 세포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면역체계에 들키지 않도록 프로그램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폴리오 병균이 암 세포에 붙게되면 환자의 면역체계가 그것을 인식하고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암세포가 죽어버리게 됩니다. 우리 속에 숨어있는 죄가 우리를 방심하게 하고, 잠들게 한다면, 우리에게 닥친 고난은 우리를 깨우고 기도하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고난은 참 감사한 것입니다. 이번 주간에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시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