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희를 기다리는 사람들

작성자:     작성일시: 작성일2011-09-14 22:06:35    조회: 1,935회    댓글: 0
한국 신문에 뜬 기사를 봤습니다. 홍대 앞에 "카페 정윤희"라고 불리우는 곳이 있답니다. 이 카페는 20여년 전 대중의 눈앞에서 사라진 7,80년대 미모의 여배우 정윤희씨를 주제로 데콜을 갖춘 곳입니다. 그가 출현한 영화 포스터, 영화 장면 사진, 등 그를 기억나게 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카페가 주관하는 인터넷 카페는 엄청난 수가 가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미 흘러간 옛 시절의 배우를 동경하는 팬클럽의 회원이 넘쳐난다고 합니다. 

어느날 팬 미팅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꼭 그 미팅에 정윤희씨가 직접 나타나서 저들 앞에 설 것을 가슴 조리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정윤희씨가 나타난다면 그의 모습이 어떠할까? 얼마나 궁금했을까요? 그런데 결국 정윤희씨는 직접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단지 팬 미팅이 끝나기 일보 직전에 그가 보낸 화분과 카드가 택배로 배달되었습니다. "나를 지금까지 기억해 줘서 고맙다"는 메세지를 담은 카드를 읽으며 팬들은 조금이나마 만족을 누렸다고 합니다. 

이런 기사를 읽으면서 나도 잊어버렸던 정윤희씨의 얼굴을 다시 회상해 낼 수 있었습니다. 아마 초등학교 시절 일이었던 것 같은데 . . . 아마도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미성년자여서 볼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옛 생각이 솔솔 나는 그런 느낌이 있었습니다. 마치 얼마전 통기타 치며 노래하는 "세시봉" 가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그런 느낌이었지요. 

그런데 정윤희씨를 다시 보려고 기달렸다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떤 것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과거의 추억으로 회상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현재로 끌어내고 싶어하는 그 심정 . . .  사람들은 이처럼 시간의 흐름을 아쉬워하고 또 그 시간을 역행해 보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끼는 것 같습니다. C. S. Lewis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제 중에서 현재가 가장 영원과 가깝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현재가 현재인 만큼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이라는 영원입니다. 지금 뭔가를 느끼고 있을 때 우리는 그 느낌에 젖어 들 수 있습니다. 아쉬움이나 기대감 같은 것이 아니라 지금 경험하고 있는 그 것 속에 빠지는 것이지요. 과거를 현재의 감정으로 다시 끌어드리는 것을 "회상"이라고 하고 미래를 지금으로 당겨 느껴 보는 것을 "상상"이라고 하겠지요. 우리는 무척이나 경험주의적인 존재들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의 신앙은 이것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와 구속 사역은 깊은 과거의 사건이고, 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은 언제일지 모르는 미래의 사건이지만, 지금 성령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사역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은혜로 누릴 수 있으니까요. 매번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의 팬 클럽은 바로 이 시간 이 곳에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라는 기대감을 버리지 않지요. 그리고 말씀과 성례를 통해서 그가 와 계신다는 "영적 임재"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헛된 것이 아닙니다. 정윤희씨가 버젓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의 팬 클럽이 그를 기다리는 것은 그리 바보같은 짓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그로 부터 기별이 올테니까요. 우리 주님도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예배와 그를 향한 갈망이 그리 허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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