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Worldview)이란 단어가 한국교회에 소개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세계관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고조되고 있습니다.
먼저 세계관이란 신학과 기독교 철학이 접목되는 부분에 해당하는 개념입니다. 중요한 것은 통전성과 일관성이 있는 "사고의 시스템" (system of thought)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산발적인 사고들이나 또는 성과 속 (sacred and secular)이 이원화된 사고가 갖는 문제를 극복하자는 것이지요. 신앙이 있는 것 같은데 신앙이 삶 전체를 끌어안지 못하는 것을 세계관이 결려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관적인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세상은 무엇인가? 궁극적인 현실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누구신가? (이상, 존재론적 질문); 나는 왜 세상에 존재하는가? 나는 어떻게 물질/영적 세계와 관계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 죄는 무엇인가?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고 살것인가? (이상, 윤리론적 질문).
기독교 세계관이란 성경을 토대로한 기독교적 관점으로 일관성 있게 위의 질문들에 대하여 답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어떻게 보면 전통적인 신학의 틀에서 "조직신학"이 곧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할 수 도 있습니다. 개혁주의 변증가인 밴틸 박사는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세계관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은 특히 문화영역에서 사역하는 분들입니다. 어떻게 신앙과 문화 (특히 미술, 음악, 영화 등 예술 부분)이 조화를 이룰 것인가? 또는 정치, 경제 영역에 있는 분들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가치관과도 많은 관계를 갖게 됩니다.
중국에 있어서 유물론 주의가 사고를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자본주의와 유물론 주의가 손을 잡으니까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한 사회가 되고 만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사는게 사는 것이 아닌 사회 말입니다. 중국에서는 경제범이 사형집행을 당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지요. 유물론 주의 위에 자유가 범람하니까 실용주의적 사고로 가득찹니다. 도덕이나 윤리는 귀찮은 것이 되었습니다. 돈을 벌 수 있다면 가족도, 개인의 윤리도 희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계관적인 문제가 중국에 시급하다는 것이지요. 물론 한국에도 시급한 것은 마찮가지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의식이 많이 변화된 것 같습니다. 역시 갈등을 하다보면 발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 이정도로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요.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