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변화를 위하여” [1]

작성자:     작성일시: 작성일2004-10-19 12:23:14    조회: 2,984회    댓글: 1
2004 10 17                    주일예배 말씀요약

“온전한 변화를 위하여”

디모데 후서  3장  14-17절              설교: 이병은목사

교회는 선교단체는 아니지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하는 선교 사명을 갖고 있다. 또 자선 단체는 아니지만 주님의 사랑으로 살라는 명령을 받았기에 이웃을 섬겨야 한다. 또 학교가 아니지만 말씀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사역을 감당한다. 그 이유는 교회가 진리의 터와 기둥이고 주의  말씀을 가르치라는 명령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목적) 무엇을(내용) 어떻게(방법) 할 것인가?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실행하는데에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14절과 15절에, 디모데는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알았다고 한다. 우리는 성경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구약 성경 66권이라고 소요리분답에 말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배우고 있는가?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인 성경이 제일 읽히지 않는 책이다.
“후탁신자”라는 말이 있다. 성경에 쌓인 먼지를 후 불고, 탁쳐서 털고 나오는 신자를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하는가?  교육은 사람을 이전보다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17절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한다고 말한다. 다르게 쓰인 이 두 단어는 같은 의미라고 생각된다. 온전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벽을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숙한 신자로 만드는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답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아서 존재와 행동에 있어서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온전해 질까?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객관적인 지식의 전달만으로는 부족하다.  한 개인의 성도를 하나님께서 온전케 만드는 법칙이고 온 우주 만물을 움직이시는 법칙이다.

첫째, “교훈과” 교훈을 받아야 한다. 삶의 객관적인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자기 중심적으로 산다. 이런 우리에게 이 말이 주는 의미는 ‘성경을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아라’는 하나님의 명령인 것이다. 우리가 변화 되어야 할 목표가 바로 성경이다. 우리는 권위의 가르침보다도 우리의 느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산다. (실존주의 사상이다)  이들은 자연의 변화를 보면서 그 법칙을 무시하고 자신의 느낌만을 가지고 산다. 한 여름의 더위에도 실내에서 냉방을 하고는 춥다고 느끼다고 겨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중심이 되어 모든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다.
신자가 된다고 하루 아침에 자기 중심적사고(Post modern)가 바꾸지 않는다. 바로 이런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라고 하신다.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감동이란 하나님이 숨을 훅하고 내쉰 것, 즉 하나님의 영으로 된것이라는 말이다.
말씀묵상을 하는 이유는 하루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시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이유는 객관적인 하나님의 기준을 알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의지를 확인 받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기준으로 내 생각을 바꾸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둘째, “책망과” 우리는 성경으로부터 잘못을 지적 받아야 한다.
오늘날 교육의 방법 중에 잘못된 것은 무조건 칭찬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책망하신다. 그것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잘못을 지적받아 참된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볼 때 우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바르게함과” 우리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
책망은 우리를 고치기 위한 지적이고 바르게함은 우리중심에서 하나님중심으로 바로 세워지는 것이다.
죄를 회개해야 한다. 죄의 고백과 죄에 대한 슬픔과 죄에서 돌아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의 책임과 정체성을 확인 받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일어나기 위한 것이다.

넷째, “의로 교육” 의로교육하는 것이다.
이것은 원문에는 때려서 교육을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것은 당시에 어린 아이를 교육할 때 사용된 말이다. 주의 채찍으로 때려서 교육하라는 것이다. 매를 때려서라도 의로 교육받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변화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흠도 없고 온전하게 변화 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습관을 인정해야 한다. 성경 교육은 사람을 존재적으로 변화 시키기 위함이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변화되어져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간섭하시는 것이다. 우리를 간섭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삶의 습관, 세계관, 가치의 문제는 하나님의 전 우주적인 사건으로 우리의 관심을 돌리게 만드시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초자연적인 우주적 창조를 말하고 이 질서는 마지막날까지 보존되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적인 세계관에서 바라볼때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죄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건으로 회복 되어지는 것임을 알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하는 것을 믿어야 한다. 기독교적 종말론은 현실을 무시하고 천국만을 사모하는 무책임 적인 것이 아니다.
온전한 변화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 되기 위해서 부름받은 것이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과 핵보유하기 위해 애쓰며 살고, 개인도 자기 중심으로 산다. 그런 우리를 변화 시키기 위해서 구속의 역사를 시작하신 것이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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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설교가 안 올라와서 제가 받아 적은 것을 교정하지 못하고 올렸습니다. 이 목사님! 의미가 잘못 전달 된 것이 있으면 지적해 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