봤다. 그때의 파리를 생각해 보면 마치 지금의 뉴욕이나 서울과 같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넘쳐나는 대도시였을 것이고, 매일 변화하는 역동감이 눈에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남부 시골촌놈이었던 세잔에겐 그런 것들이 신이 나기보단 멘털이
힘들었을 것 같다. 그림 공부를 하러 간 그에게는 정통 고전주의를 고집하는 그의
희망 미술학교에서 외면당하고, 또 새롭게 떠 오르던 초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등등한
기세에 눌렸을 것이다. 이렇게 치이고 저렇게 치이고.. 그나마 그의 고향친구 에밀 졸라가
파리에 있어 겨우 겨우 버티는 날들이지 않았을까?
그 당시 인상파라고 불렸던 모네, 마네, 피사르 등의 신세대들은 고전파 기득권에
(르네상스시대의 그림사조를 그대로 계승한) 어마무시한 도전이었고, 그들의 기세는
대단했을 것이다. 나름 그들이 새로운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었고, 세잔은 그저 어리숙한
젊은 예술가로 매일이 혼란이었을 것이다. 나도 나름 그림에 대해선 뭔가 손에 잡히는데
나보다 잘난 놈들이 많아.. 비슷한 처지에 있던 젊은 미술가 고호나 로트렉과는 달리
그가 굳이 파리에 짱 박혀 있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구질구질하게
보이던 생활은 차라리 때려치워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그래서 심플하게 포기를
선언하고 고향 액상, Aix로 돌아갔다. (귀향 후 다시 파리로 몇 번 오가곤 했다.) 언제나
따듯한 태양과 부드러운 바람이 있는 이곳으로
그의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만들 수 있는 판사, 교수는 죽어도 하기 싫었고, 그래도 내
고집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친구들도 있고, 소재도 차고 넘치는 고향이 좋았을 것이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그의 마음에 꼭꼭 숨어 있는 그것을 찾기 위해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린다. 새로운 풍경을 그리기 위해 무거운 배낭과 이젤을 매고 먼 거리쯤 걸어가는
고통쯤은 오히려 즐거웠을 것이다. 이때의 열정은 고흐의 그것과 비교할 만한 것이었다.
알프스 산맥의 끝이 액상 Aix 동쪽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산이 하나 있다. 이름이 생 빅투아르
St. Victoire이다. 세잔은 태어나면서부터 이 산을 봐왔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마주한
이 산은 그를 오랫동안 기다려온 친구 같았을 곳이다. 조용필 노래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이 떠올랐다. 본격적으로 이 산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의 그림은 이제 온 세상을 바꾸기 시작한다.
세잔이 생 빅투아르산을 자주 그렸던 곳을 갔다. 그는 액상 Aix 여러 곳을 다니며 그 산을
그렸지만, 그의 아틀리에에서 오르막길 걸어서 10분 정도 가면 Painter’s Terrain이라고
이름 붙여진 조그마한 언덕이 있다. 그는 그의 아틀리에에서 이곳을 밥 먹듯이 왔다 한다.
언덕으로 올라가니 그가 그린 빅투아르산 그림 아홉 개가 주룩 전시되어 있다. 앞만 보고
동산을 오르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니 빅투아르산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와.. 그 산이다. 내가 수없이 그의 그림에서 보았던 바로 그 산이다. 마치 예전에 페루에서
안개가 걷힌 마추픽추를 바라보는 그런 감동이었다. 아쉬운 것도 있었다. 그동안 가까이
있는 나무들이 많이 자라 시야가 좀 가린다. 세잔의 그림과는 다르게 산 앞으로 보이는
언덕풍경은 거의 숲으로 가려져 있다. 100여 년이 흘렀으니 조금 변한 것은 당연이라
생각했다. 휑하니 뚫려 있던 공간에 동네가 들어서고 나무들은 구속 없이 마구 자랐을 것이다.
산 정상에는 없던 십자가도 보이고, 툭 튀어나와 있는 구조물도 보인다. 약간은 아쉬웠지만,
세잔이 이곳에서 열심히 열심히 같은 곳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들이 주주룩
눈앞에 세라믹으로 만들어져 야외전시되어 있으니 그 또한 감동이었다. 8점이 전시되어
있어 여러 가지로 비교할 수 있었고, 내 고향 필라델피아 박물관에서 보았던 그 그림도
있다. 연대를 살펴보니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로 전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 1904-1906라고
적혀있다. 한 작품을 시작해 끝날 때까지 그것을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같은 소재이지만 여러 작품을
같이 작업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그림에 같은 연대가 붙어있다. 하지만 다 다른 그림들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같은 산을 그린 색채가 다 다르게 드러나는 그림들이었다. 좀 더 완성도가 높은
그림도 있었고, 그러지 않은 것도 같이 있어 보는 재미가 더 있다. 같은 구조에 수없이
변해가는 색채가 마치 세잔이 이곳에 나랑 같이 서 있는 것 같은 흥분을 주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