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는것은, 배운다는 것은 마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지식의
조각조각들을 모으는 행동일 것같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퍼즐의 조각들을
다른 이들의 가르침을 통해, 혹은 먼저 간 선배들이 남긴 책들을 통해 모으는 행위일것이다.
행동한다는것은 이 배움을 바탕으로한 우리 정신적 상태의 외부 표출이다. 다시 말해 행동은 배움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배우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걸까? 아니 왜 행동 할 수 없는 걸까?
안다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어찌 보면 큰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두 언덕같다.
우리가 배움의 일환으로 지식의 퍼즐들을 모아서 안다는 언덕에 쌓아 놓고 이제 행동이라는 언덕에 옮기려 한다.
그런데 그 앞에는 거센 물살이 흐르는 세상이란 강이 놓여있다.
우리는 자아 성찰 또는 인격 수양이라는 수영기술을 통해
한 조각씩 배움의 퍼즐을 행동이라는 언덕에 옮겨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조각 나르고는 우리는 거친 강물 탓에 곧잘 피곤해지고 힘들어 한다.
그리곤 고갈된 체력으로 인해 쉬는 시간을 갖는다.
배움이라는 언덕에서 쉬면서 우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이렇게 힘들까? 왜 행동의 언덕에 배움의 퍼즐들이 잘 쌓이지 않는걸까?
다시 말해, 왜 배우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 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강한 세상이라는 강물을 건너 행동하기까진 무척 고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세상의 유혹과 게으름과 나태속에서 행동의 언덕까지 가기 위해 자신을 부단히 갈고 닦아야 한다.
이 거센 물살을 헤치고 언덕까지 배움의 퍼즐을 옮기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리를 세우는 일이리라.
어쩌면 배움과 행동의 일치의 비밀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배움의 퍼즐을 하나하나 쌓아가며 다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고 어쩌면 거센 물살에 배움의 퍼즐들이 쓸려 내려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리가 만들어 지는 날 나는 비로소 내가 그날 모은 배움의 퍼즐을 그날 행동의 언덕에 쌓아 놓을 수 있으리라.
언행일치의 경지에 도달하리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 사람이 없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어쩌면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이 거친 세상에서 하늘나라까지
가는 다리를 놓으시기 위해 희생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를 안전하게 하늘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