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서를 중심으로 본 지도자론”
재직 수련회 첫 시간 토요일 윤영탁 목사 07/08/2006
오늘 우리가 모인 목적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일군으로 세워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오늘의 강의 주제는 “모범적 일군이 되자.”입니다.
학개 선지자는 소선지자 중에 열 번째 사역자인데 6월1일부터 9월 23일까지 짧은 사역을 한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이 주권자이기에 우리가 일을 많이 하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무슨 일이든지 어떤 기간이든지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시는 동안에 그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학개서의 내용을 보면 네 가지의 메시지가 나옵니다.
학개서는 저자 개인의 반응을 가지고 쓴 것이 아닌 모범적 사역자에 대한 교과서입니다.
오늘 강의의 부제는 교회의 모임이나 성경공부에 “자주 나가자.” “나가서 잘 먹자.”로 부쳐 봅니다.
구약 성경에서 우리들이 선지자들을 대할 때 그들은 당시의 사역자이었고, 지금은 살아 있어서 천국에 가서 만날 분이라고 생각해야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약교회의 목회자들이라고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선지자들의 메시지에 현장감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나는 학개 선지자들을 많이 부러워합니다.
제사장하고 선지자의 구별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사장들은 지적인 면에 호소를 했습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teaching에 주력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해서 개혁운동을 주관하고, 적용하고, 성령의 역사로 사역을 했는데, 제사장인 레위 인들에게 각 지역에 가서 말씀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선지자들은 정적인 면과 의지적인 면에 치중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책망도 하고, 선포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선지자의 메시지 80%가 책망으로 목양하는 것입니다.
학개서는 짧지만 그 내용은 만만치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책망이 없다고 해도 매우 중요한 성경입니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인물인 학개를 하나님이 사용하신 것이라고 보아여 합니다.
학개서는 1장 8절이 요절입니다. 또 이것은 모든 선지서의 요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지서를 읽을 때 메신저보다는 말씀을 중요하게 보아야 하지만, 전하는 자도 존경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 히 13:7, 빌 3:17)
학개서는 38절로 된 소선지서입니다. 사역 기간도 15주정도입니다. 학개와 같이 보냄을 받은 스가랴는 2년 반을 사역했습니다.
학개의 이름을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쓸 때는 그 이름에 뜻이 있었습니다.
“학개”는 절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절기를 의미하는지는 알 수 가 없습니다.
선지서에 나오는 이름을 살펴보면,
한 문장으로 된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사야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
예레미야 (여호와께서 내던지신다)
에스겔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여 주신다)
다니엘 (하나님은 나의 재판장이시다)
요엘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시다)
미가 (누가 여호와와 같으리요)
스바냐 (여호와께서 숨겨주신다)
스가랴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
또 한 단어로 된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호세아 (구원자)
아모스 (짐=burden)
오바댜 (여호와의 종)
요나 (비둘기)
나훔 (위로)
하박국 (포옹하다)
말라기 (나의 사자)
이 모든 이름은 나름대로 분명한 뜻이 있어서 이해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학개는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의 주장은 첫째는 절기 때 태어났다고 보거나 절기 때 말씀을 선포했다고 보는데 그것은 성경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
박윤선목사님이 주석한데로 학개를 오실 메시야를 생각하고 “경절의 기쁨”이라는 의미로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제일 높은 자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협력해서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완공하라.” 이것이 학개의 사역이었습니다. 그는 이 사역을 완수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름보다 우리의 사역으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p20, 계 14:13에 “행한 일일 따름이라”라는 말씀처럼 우리에게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일은 다 귀중한 것입니다.
학1:13에, 학개 선지자는 ‘여호와의 사자’라는 특이한 칭호가 붙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만난 세 천사 중 한 분은 여호와라고 불리웠습니다. 학개의 동역자인 스가랴는 여호와의 사자를 전통적인 의미로 호칭했습니다. 선지자에게 여호와의 사자라고 부른 것은 여기 학개선지자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연대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BC 538(혹, 537년)에 바벨론 포로에서 42,360명이 돌아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2년(BC 536) 만에 성전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6년 동안은 공사를 진행하다가 그 후 10년 동안 방치하고 있는 그 때(BC 520)에 학개하고 스가랴가 왔습니다. 하나님이 갑자기 그들을 보내서 일곱 가지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학개는 1, 2, 4, 5번째 메시지를 전했고, 스가랴 3, 6, 7 번째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학개는 선지자였고, 스가랴는 제사장 계통입니다. 그러므로 그 둘은 전문성이 달랐습니다. 성전과 예배의식에는 스가랴가 전문가였습니다. 그러므로 학개가 메시지를 전할 때 스가랴가 돕고. 스가랴가 메시지를 전하면 학개가 도와서 4년(BC 516)만에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치지도자도 종교지도자도 시험에 들어 있는 그 때에 학개 선지자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자”라는 칭호를 받은 것입니다. 스가랴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구원하실 때에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이 기도 할 때에 “여호와여 나를 기억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말씀 중심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우리에게 다시 은혜를 주셔서 성전을 완공하신다.’는 의미로 스가랴를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학개의 인격과 자질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자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관련된 것은 전혀 기록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선지서나 성경을 보면 자기에 관한 것이 기록되어 있지만 학개서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특이합니다. 또 나이에 대해서도 측정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파고들어서 문제입니다. 신학자는 ‘간단한 것을 복잡하게 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성경이 말하지 않은 것에는 너무 깊은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높이고 또 상대방을 높여야 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할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자를 주님이 직분을 주셨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두 번째는 동역자와 화목하며 협력하는 귀한 사역자이었습니다.
이것은 은사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 서로에게 동역자입니다. (co-worker) 자신이 먼저 다른 분을 잘 섬기면 하나님이 그를 세워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밑에서 일하는 사람을 잘 섬겨야 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는 협력이 없습니다. 바울처럼 내 분량대로 내가 받은 달란트대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그 나름대로 받은 달란트가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항상 다른 가지를 쳐서 둥지를 트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밑에서 잘 섬기는 자가 나중에는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학개와 스가랴처럼 우리도 협력을 잘 해서 온 교회에 영향을 미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사회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되고 성령으로 되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화목을 시켜야 합니다. 우월을 따져서는 일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좋은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 짝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동역자 만들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롬 12:10-11, 롬 12:16, 빌 2:1-4
세 번째는 여호와만을 높이는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을 말할 때는 항상 3인칭으로 말했습니다. “학개가”라고 부르는 것은 3인칭입니다. “I = 여호와”는 1인칭 주어입니다. 항상 자신은 대언자고 사역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인칭이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신앙이 기준선 밑으로 내려가면 그 공간을 하나님이 은혜로 채워 주시기에 사는 것입니다.
도표 1
학개서에는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이 반복되는 것을 봅니다.
네 번째로는 충성된 인물이었다.
네 번의 메시지마다 “여호와의 말씀이 학개에게 임하였다”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끝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으로로 끝납니다. 메시지마다 말씀으로 시작해서 말씀으로 끝나는 말씀만 전하는 자였습니다.
다른 성경에는 어느 부분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어느 부분이 저자의 말인지가 구분이 안 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학개서는 말씀만 충성되게 전한 선지자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위해서 사역을 받았습니다. 나의 이름이 나의 사역과 매치가 되어서 사역으로 나의 이름이 기억되게 사시고,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우리의 힘이 아닌 주님의 힘으로 되는 것으로 알아 주님을 머리로 삼고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작은 것이라도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충성하여 후대에도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