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 전도사께서 귀천이라는 찻집을 통해서 천상병 시인의 <바람에도 길이 있다>는 시를 소개 해준바 있다.
나에게도 세월의 눈가림으로 잠시 잊고 있었지만 다방의 홍수를 이루던 시절에 살았기에 당연히 다방에 (요즘은 찻집이라고 하나 ?)에 대한 많은 추억이 남아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유독 오랜 세월을 두고 내 기억에 남아 있는 1966년 초에 만난 찻집 ~!
기록에 보면 처음에는 <어우동>이라는 술집이었는데 여주인이 자기가 좋아하던 박인환 시인이 드나들던 곳이라는 것을 알고 다음날 당장 <세월이 가면>이라고 간판을 바꿨다 한다.
을지로 입구 외환은행 본점 건물 외편을 끼고 명동성당 쪽으로 가다보면 낡고 앙상스런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박인환 시인-, 일제의 압박과 해방, 그리고 6.25 동란 (당시 종군 기자) 그 틈새에서 운명적으로 살아온 죄로 죽음이 휩쓸고 간 세월의 아픔과 고뇌 그리고 그리운 사람들과의 이별했던 고통,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실의 세대를 비탄하며 좌절했던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영혼의 소리로 대변했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시인이다.
~ 세월이 가면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수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혀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이름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이 시는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던 1956년 이른 봄 그가 작고하기 1년전 명동 어느 대포집에서 즉흥적으로 읊은 시에 함께 동석했던 극작가 이진섭씨가 곡을 붙였고 라애심씨가(백치 아다다 주연 배우겸 가수 ) 노래로 불렀다고 한다.
그 해 나는 어디서 어떻게 배웠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나는 시인이나 된 것처럼 이 노래를 부르곤 했으며그 인연으로 <세월이 가면> 찻집을 알게 되었다. (당시 일반인에게는 많이 불려진 노래는 아니였다.)
사람은 누구나가 시인이 되고 싶은 때가 있다. 나도 한 때 그랬다. 그런 연유에서 인지 지금도 나는 낙서처럼 시(?)를 그려낸다.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의 영혼과 육신의 짙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갈망과 후회와 세월이 남긴 추억 그리고 감사를 쓰려고 애를 태운다.
언젠가 목사님의 설교에서 양파와 같이 껍질을 베끼고 베긴 깊은 곳에 있는 그 영혼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