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하는 아내를 데리고 조카네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직도 모릅니다. 그 소식을 전해야 하는 내 입이 원망스럽습니다. 황망한 모습으로 울면서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고 통곡하는 외할머니를 봅니다. 병원에 갔던 부모가 돌아오고 함께 통곡합니다. 누가 이 현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혼자 조카의 방을 들어 갔습니다. 어제 저녁 벗어서 방바닥에 그대로 둔 반 바지며 양말이 그대롭니다. 금방 들어와서 다시 주어 입을 것 같습니다. 조카의 냄새도 그대로입니다.
박목사님, 이목사님 그리고 손집사님이 오셔서 위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보고 민망히 여기시고 우신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이 현실 앞에 눈물만 나옵니다. 오후에는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함께 슬퍼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현실로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빠와 둘이서 장례절차에 대해 의논하면서 조카 방에 갔다온 이야기를 하니까 아빠도 같은 마음으로 들어가 봤다면서 오늘은 그 아이의 방에서 자고 싶다고 합니다. 혹시 꿈에라도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친할머니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말합니다. 천국에 간 줄은 알아도 지금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엄마는 어찌살라고.....
오늘은 이 조카를 멀리 떠나 보낼 준비를 하면서 바쁘게 지냈습니다. 먼 하늘만 봐도, 얼음 꽃이 핀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목련 새 눈만 봐도 눈물이 납니다. 에이 나쁜 자식! 하면서 숨죽어 울고 또 웁니다.
다른 식구들 앞에서는 나는 괜찮다고 슬픔을 억누르던 아빠가 홀로 숨어 통곡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통곡 소리에 돌아서서 나도 몰래 속으로 같이 통곡의 눈물을 흘립니다. 이 조카는 내게 조카 이상이었습니다. 아들 같은 조카였습니다. 영어, 중국어, 한국어를 해야 하는 이 아이가 세살 때까지 아빠는 빠바, 이모부는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어릴 때에 욕심을 많이 부린 우리 유니하고 겨우 다섯달 빠른 오빠인데도 같이 자라면서 다 양보하던 착한 오빠였습니다. 아장아장 걸을 때는 양복을 입혀서 드레스를 입은 유니와 같이 교회에도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 아이가 난 아직 준비도 안됐는데 갑자기 떠난 답니다. 그것도 아주 멀리 떠난 답니다. 일년간 상해에 가서 공부한다고 하던 얘가 더 멀리멀리 떠난답니다.
엄마가 내게 부탁을 합니다. 이 아이를 마지막 보내면서 꽃장식은 아이가 좋아했던 색깔로 엄마가 직접하고 싶답니다. 그래서 사진 옆에 둘 꽃은 엄마가 하고, 관 위에 둘 꽃은 엄마랑 잘 아는 분에게 부탁해서 환하고 밝은 색의 꽃을 하기로 했습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이미 이 집을 채우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엄마, 아빠, 이모 그리고 이모부가 함께 기쁨으로 의논했습니다.
우리 이제 이 아이가 천국에 들어 간 것을 축하해주자고..... 그래서 내일 이 아이를 보내면서 우리는 검정조복은 입지말자고.....
아빠가 엄마에게 물어봅니다. 얼마 전에 이 아이가 아빠한테 돈 타 가고 싶어서 사 준 나비넥타이를 맬까하고......
그래 그렇게 할까? 엄마가 대답합니다.
아니야 그건 좀 너무했다. 이모부가 그것은 안된다고 오히려 만류합니다.
천국을 소유한 자만이 알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이 가정에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머지않아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왜? 하나님이 이 아이를 그렇게 일찍 거두어 가셨는지를.....
그래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슬픔을 견딜 수가 없지만,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우리로 능히 감당케 하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오늘도 의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