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김규동

명산 아닌
그 산이
두어 점 구름 아래
조용히 누웠는 이름 없는 그 산이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있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햇살이 부서져
황금빛으로 물든
오솔길에는
빨갛게 익은 열구밥이
정물화같이
푸른 대기 가운데 고정되었다

바람과 짐승과 안개가
산 저편으로 잦아든 뒤
해 기울고
소달구지 하나 지나지 않는
신작로 길이
영원처럼 멀었다

바다 우짖음 소리도
강물의 고요한 숨결도
알지 못하나
소박한 자태로 하여
쓸쓸한 기쁨 안주던 산
어린 나를 키워준 산이
탕아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시여
너의 고뇌와 눈물의 아름다움
그리워하지 않은 때 없으나
이룬 것 없이
죄만 쌓여
언젠가는 돌아가게 될
 고향 하늘

아, 철없이 나선
유랑길
몸은 병들어 초라하기 짝이 없으나
받아주리라 용서해주리라 너만은
이름 없는 나의 산

---------------
김규동이라는 시인은 1925년 생인데요,
이북에서 피난을 내려온 후로 줄곧 북녘에 있는 고향을
안타깝게 노래한 시인입니다.
돌아갈 고향이 있는 나그네인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 . . 마음이 유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