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앞치마 두르고 일하는 것을 보면 역겹다고 생각하던 나다. 그래서 식탁을 펴고 접는 일은 해도 절대로 (?) 부엌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어데 교회서 뿐이랴 집에서 물 한잔 마시는 것도 꼭 남을 시켜서 마신다. 이 정도면 여 성도님 들한테 빗발치는 항의를 받는 정도가 아니라 얻어맞기 딱 이다.
그런 나에게 시련의 새해가 왔다.
신년 첫 번째 우리구역이 친교 당번이 된 것이다. 메뉴 정하는 것 부터 불난이 일기 시작했다. 하기 쉬운 국으로 하자는 나를 윽박지르며 신년 초인데 그래도 떡국으로 해야 한다며 집 사람은 시종 일관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사실 무엇을 하던 내가 할 것도 아닌데 이것으로 반나절을 말씨름했다.
결국은 “당신이 다 알아서 해 !” 소리치곤 물러섰다.
그래도 어절 수 없이 걱정이 된다. 집 사람 실력으로 그 많은 국을 준비 할 수 있을까
만약에 성도님들이 맛이 없었다고 하면 어떡하나 경비는 경비대로, 수고는 수고대로 하고 욕들으면 어쩌나 ...
우선 공동 식사를 맡은 이기원 구역장과 구체적인 상의마저도 아내에게 떠맡기고 훗날 잘 못 되면 호되게 야단 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주일 예배후 친교실에 들어섰다. 빽빽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성도님들을 보니 괜히 마음이 저린다. 맛은 어떨까 ? 오늘은 성도님들도 많이 왔는데 부족하지는 않을까?
발 거름이 무겁다. 그래도 한번은 부닥쳐야 할 일 어느 여 집사 곁에 가서 속삭이듯
“ 떡국 맛이 어때 ? ”
“음~ 괜찮아요 근데 왜 물어요 ? ”
“몰라도 돼 ! ”
돌아서는 등 뒤에 키랑 카랑한 소리가 들린다.
“ 집사님 오늘 당번이구나 ㅎㅎㅎㅎㅎ ”
일단은 안심이 되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늘 앉던 좌석에 앉아 떡국을 한 입 먹어봤다.
그런데 몇 일 동안 아팠던 잇몸 때문인지 맛을 잘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옆 좌석에 앉은 장로님에게 은근 슬적 물었다.
“내 입에는 맛있는 것 같은데 어때요 ? ”
“왜 이러시나 당번이면 앞치마 두르고 주방에나 가시지 ㅎㅎㅎ ” 장로님은 낌새를 이미 알아차리고 호탕하게 웃으시고는
“ 누가 간을 봤는 지 아주 간이 잘 맞고 국물이 쉬원 해 ”
듣는 순간 기분이 좋아 젔지만 어쩐지 닭살이 돋는다.
나는 일부로 외면하며 앞에 말에 대댭했다
“ ㅎㅎㅎ주방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거치장 스럽다고 나가라고 해 ..‘ 들어보지도 않은 말을 그냥 지어내어 애길 했다. 그때 까지 걱정과 불안 때문에 주방에는 들어 가 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 여보 정말 수고 했어! ”
“ 어디 내가 했나요 옆에서 많이 도와 주어서 아주 편하게 했어요 더욱이 젊은 집사님들이 어찌나 잘 하는지..............”
“이제 부터는 당신이 구역장 해 ! ”
큰 소리로 쉬원하게 한 마디 던젔다.
그리고 보니 섬김이 모임에서 어느 집사님이
“ 앞으로 섬김이는 여자 분들이 하면 어때요 ? ”
하며 반 농 반 진담으로 애기 한 적이 있었는데
“ 집사님 그런 소리 어디 가서 꺼내지도 말아요 ”
남자들 자존심을 짓 뭉게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축구공이 튀여 오르둣 불쑥 말을 내 뱉었는데 내가 그말을 반복하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래도 되겠다 싶다.
구역 모임엔 항상 식탁 공동체가 이루워저야 할 뿐아니라 말씀 나누는 시간에도 여 집사님들이 진지하고도 신중한 말 솜씨로 잘 표현하고 있고 어디 그 뿐이랴 일에 몰입하면 남성들 보다 더 열정적이며 적극적이다. 거기에 구역 식구에게 연락하는 일 까지 거의 맡아 하지 않는가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실제로 여성들이 많이 등용되는 추세가 아닌가
그리고 보니 떡국맛이 입안에 돈다.
“여보 저녁엔 남은 떡국 먹읍시다. ”
그날 오후는 유난히 기분이 하늘을 찌르듯 좋았다.
남은 여생 오늘 만 같으면 얼마나 좋으랴
쇼파에 앉으면 쉬이 잠이 올 것 같은 평안한 저녁이 서서히 닥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