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있었던 열린말씀 컨퍼런스에서 어떤 강사님의 키워드 중에 하나가 아니었나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강사님의 열띤 강연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Womanhood'가 뭔지 쉽게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원래 제가 좀 형광등이지만,그것을 정의하기가 힘들었던 것은 '바람직한 여성상(혹은 남성상)'이라는 것이 시대와 문화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지 않더라도, 현시대에서 기대하는 여성상이 이천년 전의 기대치와 많이 다를 것이 분명합니다. 또, 현재 미국내에서도 인종, 지역, 계급별로 각기 다른 여성상이 있을 것 같습니다. 좀 더 가까이는 한 가정에서도 부모, 자식 세대 간에서도 서로 기대하는 여성상이 다른 것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특정 여성상만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것이 옳바른 것인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Womanhood나 Manhood라는 것이 어떤 한 개인에 대한 기대치라기 보다는 여자 혹은 남자라는 '집단' 혹은 '그룹'을 전체적으로 묘사하는 특성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한 개인이 그가 속한 성별 집단의 모든 특성을 잘 드러내는 것은 아주 드문데, 또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이상'에 도달하려는 것이 꼭 바람직 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모든 개인들이 저마다 서로 다르기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과정이 삶의 하루하루에 재미를 더해 가지 않나 싶습니다. 만약 어떤 누구를 처음 만났는데 그 사람이 그의 성별의 대표적인 특성들을 모두 지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는면 얼마나 인생이 반복적이고 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박목사님께 항상 감탄하는 것 중 하나는 그분의 '감성'의 '섬세함'과 그로 연유되는 성도들에 대한 그 분의 개별적인 관심입니다. '감성' 과 '섬세함'이라는 것들을 구태여 구분하자면 어느 성별 그룹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박목사님을 하나님이 목적하신대로, 계획하신대로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시려고 그러한 성향들을 불어넣어 주셨을 것으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쿠키컷터로 남자 여자를 찍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저마다의 개별적 개성을 그리고 각기 소명을 다할 수 있는 능력을 불어넣은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Womanhood나 Manhood라는 구분은 상당히 인위적인 구분으로 느껴지고, 그러한 구분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데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데 얼마나 쓸모가 있나 의심이 갑니다. 남녀갈등, 그리고 그 너머 세상의 인간사이의 많은 갈등들이 '타인에 대한 채워지지 않은 기대'에 시초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가 흔히 여자는 어떠어떠해야 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상대방이 그 기대치에 도달하려는 능력의 여부와 또 그리하고 싶은 혹은 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는 상대방의 의지를 무시하고, 내가 독단적으로 내세우는 이 기대감을 어떻게 합리화할 수 있을까요? 내가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하며 강요할 권리가 나에게 있습니까? 만약 아내가 나에게 남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말하면 내가 그걸 얼마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만약 그래서 서로가 양방의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불만과 불행 속에서 살아야 하겠습니까? 아마도 이것은 스스로 정당화될 수 없는 욕심일 것입니다. 저도 그런 욕심이 수시로 고개를 들며 죄를 저지르는 인간이기에, 그 분을 이해하려고 해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도 멈칫멈칫 주저하고 반성하며 이 욕심의 고리를 끊어버릴 수 있기를 빕니다. 저의 기대를 내려놓을 수 있게 하시고, 단지 저에게 주어지는 것들을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줄리아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