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

작성자:     작성일시: 작성일2013-11-23 01:20:29    조회: 1,787회    댓글: 0
퍼 온 글이다. 무지무지 길다.. 



"
이끌기와 따르기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심지어 개미들조차도 몇 마리만 모이면 
이윽고 리더와 팔로워의 역할을 나눠가진다고 한다. 즉, 어딘가로 
이끄는 개미와 이를 따르는 다른 개미들로 나눠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아니, 사실 인간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고 인간보다 더 열등하거나 단순한 
존재라고 여겨지는 생명체에서들 조차도 그 현상이 점차적으로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지구상에서 살아 움직이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군집 즉, 사회를 
이루면 이내 이끄는 존재와 따르는 존재로 나눠진다. 예를 들어, 
친구들이 모여도 ‘어디로 가자’ 혹은 ‘무엇을 먹자’에 관한 의견
이나 
결정을 주도하는 역할을 주로 하는 사람과, 그 의견을 듣고
평가하며 
따를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마디로 
군집이 가능한 대부분 생명체에 있어서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현상인 
듯하다.  그런데 인간은 주로 이끄는 쪽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잘 
이끌까에 관심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이른바
‘리더
십’으로 대표되는 측면이다. 그리고 이 말은 정말 많은 곳에서
강연되고 또 읽히는 
소재 중의 하나가 되었다. 즉 우리는 이끌기의
중요성과 방법에 주로 심취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인류
역사는 어떻게 따르냐의 문제가 
더 중요했었다. 다만 우리가 그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이끌기와 따르기를 마치 우열 혹은
상하의 
관계로 인식하면서 이끄는 것이 좋은 것이고 이끄는 자가
더 우수한 
것이라는 생각을 필요 이상으로 우리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지니게 
됐다는 의미이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
더 
많은 다수가 어떻게 따르느냐가 더 중요하며 최근의 동향들을
보면 팔로워십에 관한 
강조로 이를 통해 확인해 볼수도 있다.

요약하자면 리더십과 팔로워십을 구분하여 단절시키는 것보다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이끌기와 따르기를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함께 
보면서 생각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학문적으로도 ‘거래형 리더십에서 변혁적 리더십으로의
전환’을 
비롯해 다양한 입장들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리더라면 
카리스마가 있어야지’ 정도의 관점으로만 이끌기와 따르기
간의 
관계를 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매우 협소한 생각일 뿐만
아니라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측면마저도 포함하고 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카리스마의 강박? 

카리스마라는 결과에 대한 이름표일 뿐!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의 카리스마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은 
사실 결과에 가깝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어떤 리더가 팔로워들을 
무리 없이 잘 이끌고 가면 사람들이 그 결과를 놓고 ‘그 사람 카리스마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고정관념은 
카리스마라고 하면 사람들을 이끌어 내는 파워로서의 측면만을 떠올린다. 
그 여파로 많은 리더들 자신조차 “be charismatic(카리스마를가지자)”
라는 일종의 강박마저도 가지는 듯하다. 그래서 거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카리스마 있다’라고 말할 때도 종종 있다. 하지만 
거칠다고 그 사람을 따르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카리스마란 사실 gift
(신이 인간에게 준 재능)라는 뜻이며 따라서 특별한 재능에 관한 다양한 
측면들을 통칭한다. 사전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휘어잡거나 심복하게 
하는 능력이나 자질’을 뜻한다. 게다가 학문적으로는 훨씬 더 넓은 
의미와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은연중에 그 능력과 자질을 
‘거친 물리적 힘’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래서 ‘그 사람 카리스마 있다’라고 하면 이른바 야성적이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우리 스스로도 카리스마를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과격하고 다소 우스꽝스러울 정도의 
침묵 혹은 거친 언행을 해보았던 부끄러운 기억을 한 두 개쯤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그야말로 협소하게
만 보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진심으로 따르는가만 되돌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어머니, 선배, 혹은 직장상사 중 그런 협소한 
의미의 카리스마가 있기에 우리가 따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에서 이끄는 사람의 역량과 자질에 관하여 논하고 
‘이렇게 하라’ 혹은 ‘이런 리더가 되라’고 조언하다. 물론 어느 정도는 
옳은 말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파편화된 행동강령들은 현실 세계의 
상황과 시점에서 따라해 보려면 잘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더 큰 혼란감을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렇다면 무엇이 가장 본질인가? 이는 굳이 리더십이나 인간관계라는 
특정한 측면을 논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성격의 본성 자체에 
관한 이해를 통해서 더 좋은 이해가 가능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정직함이다.

이끌기와 따르기의 본질 ‘정직함’ 

심리학자들은 한 목소리로 인간관계의 본질은 서로에 대한 정직함
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정직이라는 말의 의미가
크게 
퇴색된 것이 현대사회의 현실인 듯하다. 이른바 ‘정직하면 손해
본다’라는 
오해들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관계에 
있어서 정직함은 미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갖춰야 하는 요소이며 더 나아가 본질적 역량이다.  

그런데도 왜 ‘정직=손해’라는 잘못된 믿음이 만들어졌을까? 첫 번째
이유는 
이른바 생각의 오류 자체에 기인한다. 이른바 기억의 편향인
것이다. 많은 
정직한 사람들이 별다른 손해 없이 일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또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면 곁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한
듯 별 신경을 쓰지 않으며 
기억에도 담지 않는다. 하지만 정직한 사람이
피해를 보거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 사람들은
이를 두고두고 기억에 담는다. 그
리고는 정직의 무능함에 관한 자기
충족적 예언을 지속해 나간다. 이러한 판단의 
오류는 사실 정직 이외의
영역에
서도 얼마든지 관찰이 가능하다. ‘그거 봐’라든가 ‘그럴 줄
알았다’는 탄식 뒤에 숨은 생각의 오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두 번째의 이유이다. 이른바 정직함의 정도가
다른 
성격 혹은 능력과 만날 때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우리가
무의식적으로는
열심히 살피면서도 의식상에 떠올려 중요한 판단의 
근거로 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켈러리 대학의 이기범 교수를 비롯한
이 분야의 저명한 심리학자들은 정
직함이 얼마나 중요한 요인인가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으며 관련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
이 가능하다. 정직함이 강한 사람들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
상식적인 대답은 ‘거짓말을 하지 않음’이다. 하지만 이는 정직(正直)에
관한 매우 협소한 의미이며 심지어 때로는 오해를 낳기도 한다. 
마치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물론 필자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이 하나조차
제대로 
실천하며 사는 것마저도 정말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정직함의 
충분조건을 지니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직함이란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정직한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자.

1. 타인을 조종하지 않고 가식적인 것을 싫어한다.
2. 공정하고 준법적이며, 부와 사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청렴하다.
3. 자신이 특별히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따라서 약자라 하더라도 
특별한 하대를 하지 않는다.  

이에 기초하면 정직함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떠한 특징을 보이는가에 관해서도 
쉽게 이해가 가능하다.

1. 목적을 위해 사람을 사귀며 필요 시에는 아부하는 것도 언제든지 가능하다.
2.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규정과 규칙의 위반을 마다하지 않으며 부와 지위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3.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가를 늘 생각하며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되면 관계의 갑작스런 단절도 마다하지 않는다.
4. 타인의 위에 군림하려 하며 특권의식도 매우 강하다.
따라서 정직함이 떨어지는 사람은 다른 성격이나 능력 요인이 좋다 하더라도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그 결과가 좋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즉 낮은 정직성과 
다른 요인들이 만날 때 대부분 아주 좋지 못한 유형의 사람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정직함이 낮은 사람들이
* 원만성이 높으면 아첨꾼일 가능성이 높으며, 반대로 낮으면 이기적인 싸움닭의 모습을 보인다.
* 외향적이면 자아도취적인 사람이며, 반대로 내성적이면 거만한 고집쟁이일 가능성이 크다.
* 성실하면 자기밖에 모르는 음모에 가득 찬 야심가가 되며, 반대로 나태하면 그야말로 최악의 
불평불만자이다.

위의 몇 가지만 보아도 정직함이 떨어지는 사람은 그 외의 어떤 능력이나
성격이 결합돼도 결코 인간관계에 있어서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사람의 
정직함 자체를 눈여겨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 결과로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부정적 모습을 통해서 
내 관계의 네트워크 상에서
제거하거나 멀어지게 만들려 한다. 간단히 말해 
만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이끌거나 따르지도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결론은 분명하다.
우리는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고 또 의식하지 않아도 결국 정직함이라

것을 기초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이끌며 또 따른다. 이끈다는 것은
정직함에 기초한 설득 하기고 따른다는 것은 그 정직함에 대한 응답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 정직을 아예 가장 먼저 본다. 부정직과
다른 
요인들이 결합되어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부정적인 일들이 다
경험되고 난 뒤에야 후회하거나 당황하는 것을 피
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몇 가지의 얄팍한 인간관계 기술이나 테크닉 혹은 카리스마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리고 정직함을 구성하는 중요한
구성요소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못지
않게 중요한 건 
리의 자식, 후배, 그리고 후손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쳐 주고 
스스로 기를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한다.  그렇지만
심리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늘 안타까운 현실은 우리가 늘 ‘이 세상은
정글이다’라는 생각을 너무 강하
게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분명 힘과 기술과 같은 
경쟁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는 엄
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정직함마저 거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글에서의 생존만을 지나치게
고민하면 정직을
가장 먼저 희생시키게 되고 결국 인생의 끝까지 같이 가야 할 소중한
동반자들로부터 능력의 용도가 다했을 때 가장 먼저 버려지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를 주위에서 너무나도 많이 
격한다. 우리 자신을 인간관계에 있어서 쉽게 버려지는 사람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오랜 세월 다른 사람들과 의미 있는 공존을 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그 열쇠는 바로 ‘정직’에 있다.

발행 2013.11.19.
주석
1
Franks NR, Richardson T (2006). "T eaching in tandem-running ants". Nature
439 (7073): 153.
doi:10.1038/439153a. PM ID 16407943.
글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



우린 정직을 외치는 것보다 '솔직해라'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나도 연약하고 너도 연약하다.  그것이 우리의 현주소이고 그러니
우린 도움을 갈구해야 한다.  늘 연약하다.  그래서 늘 솔직하다.
좀 더 정직할 순 없을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