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실의 기록이라 할때 마치 교회의 연혁과 같이 사건의 인물과 시간만을 순차적으로 나열하는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야기 구조에서 들려지는 메세지입니다. 다큐는 사건을 해석합니다.
영상언어적인 기법에서 표현되어지는 해석을 통하여 관객은 사실자체 보다는 작가의 해석에 노출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사건의 전반에 대한 관객의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 한에서 말입니다.
좋은 예로 우리가 다 잘아는 다빈치 코드와 마이클 무어가 제작한 911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그렇습니다. 모두가 어떠한 데이터들을 나열하지만 그것의 진실여부는 사실여부와는 매우 다릅니다. 일정한 이야기의 형식을 통하여 사건을 나열하여 작가는 자신의 메세지를 피력합니다. 이야기는 그래서 힘이 있습니다. 어쩌면 작가가 사용하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작품안의 인물과 사건을 만나기 보다는 작가를 만난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사실의 여부를 떠나 진실의 여부는 작가의 믿는 바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을 우리는 역사적 기록이라는 한계에 가두어 두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야기로 표현되어지는 작가의 말을 듣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얘기하지요. 이스라엘의 역사라서 한국인에게 필요 없는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인격에 대한 만남이 바로 성경이 문화적으로 쓰여진 이야기 형식 또는 어떤 서신들의 상황적 배경을 연구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성경을 대하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해 이야기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나라"라는 영화에서 만난 북한의 현실은 그 다큐의 제작/감독인 다니엘 골든의 시각과 해석을 만나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작을 허용한 북한측의 입장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의 북한에 대한 진솔한 표현은 작가의 윤리성에 위배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작가의 의도와 함께 이 영화를 선전효과로 사용하려던 북한측의 의도도 함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이 아닐 때 엉뚱한 반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북한도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에 빠질 수가 있겠죠. 골든 감독은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진솔하게 북한의 현실을 고발하였기에 이 영화가 어느 보여진 그것보다는 북한을 해석한 골든의 입장에 비추어서 북한에 대 해 깊이 파해쳐 고발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박목사님의 영화평을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는 "주체사상" 을 종교라는 입장에서 받아드려 접근해야 하는 우리 기독교인의 입장이 있습니다. 이것을 종교적인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우리 신자는 "kingdom perspective"를 가지고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세계관의 소유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교회에서 영화상영과 함께 나눈 기독교적인 접근과 상황에서 나눈 대화는 지극히 당연하며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마도 객관적으로 비기독교인들도 골든의 시각으로 표출되어진 이 다큐를 통해서 하나의 이단종교 집단으로 북한 사회를 이해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술의 영역의 왜곡으로 보여지는 매스게임과 카드섹션입니다.
일반적으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예술에 대한 개념은 "Arts for the sake of Arts" "예술을 위한 예술" 이라는 예술의 목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김정일과 북한 체제 이념을 찬양하는데 쓰이는 예술 영역의 왜곡을 비기독교인들은 받아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은 기독교적 내용을 실은 작품도 진정한 예술성을 가지지 못한 것이라 비판하곤합니다. 그러니 그들도 북한 체제를 하나의 이단종교로 보는 것이 당연하고 다니엘 골든도 예술영역의 왜곡이라는 메개를 통하여 이들이 이단종교라고 자신의 시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골든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우리는 그이 작품을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접근하여도 무방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서 북한측의 선전이라는 목적을 통해 평양의 사람들이 북한을 대표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삶의 모습은 선전용, 즉 show case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북한 선교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이슬람교나 힌두교 불교를 대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북한 선교를 생각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북한의 교회 상황과 인민들의 삶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인 데이타(북한이 이영화를 이용하는 것을 통해 이루려는 목적 때문에 북한의 실생활은 보여지는 것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와 함께 그들은 다른 종교라 생각하며 대해야 할 것이므로 좀 더 복한에 대한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단순하게 말하면 인권문제와 복지 문제일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복지문제와 인권문제는 복음 사역에서 핵심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있는 곳에 있는 자연스러운 열매라고 생각되기에 복음과 인권은 상당히 유기성을 띄고 있습니다.
진실된 다큐를 소개해 주신 박목사님께 감사드리고 선교적인 고민에 대해서 그리고 좀 더 깊은 영화해석에 대해서는 목사님의 글을 참조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이렇게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선교를 고민할 수 있는 기쁨의 교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고 우리가 영적 분별을 추구할 때 분명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도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통해서 교회에서 행해지는 예술 문화 사역에 대해서 반성해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기독교를 선전해야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를 하나의 이 땅의 또 다른 체제나 이념으로 또는 그러한 집단이 교회인 것으로 표현되어지는 기독교 예술 문화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인간성 상실에 대해 소름이 돋아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실 기독교가 예술과 문화라는 비좁은 통로를 통해 나타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문화를 하나님의 창조의 영역으로 포함하여 표현할 수 있는 복음적 기지가 엿보이는 기독교 예술 문화 사역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예술성과 미는 인격과 인간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술이 예술 다워지고 아름다움이 아름다워지는 문화 예술 활동이 바로 복음적 기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기지를 펼치는 방법이 진정한 기독교를 선전하는 방법이 아닐까요?
인간성 상실에 대한 반감으로 뭉쳐진 포스트 모던 시대는 이성주의를 반하며 신비주의를 추구합니다. 이것이 이시대의 영성입니다. 이 영성은 이성주의 때 사람들 보다 복음을 향해 더 마음의 문을 닫게 합니다. 모던이티가 기독교 영성을 반하고 이성을 추구했다면 이러한 모던이티에 반하는 포스트 모던 시대는 근거없는 영성으로 기독교 영성을 반합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복음이 필요하고 진정한 영성의 실제를 나타내 보여야 할 것이고 특별히 현시대의 영성에 진리의 영성으로 우리는 삶으로 도전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시대의 싸움은 이성주의와의 싸움을 넘어선 절대주의를 보수하는 싸움이라는 비이스(Veith)라는 학자의 말이 다시 한번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합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그 분의 이야기를 통하여 영적 실재로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반석과 같은 신앙을 주님꼐 간구하며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던 베드로의 선물로 얻어진 믿음이 우리 안에 있음을 기뻐하며 뿌듯한 설레임을 가져 봅니다.
너무 긴 글..... 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