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중 주된 그림에 대해서 누군가 설명해 놓은 인터넷 글을 퍼 온 것입니다.
참고하셔서 믿지 않거나 궁금해 하시는 분들과의 대화 속에서 오히려 주님을 증거할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HTML 그대로 퍼 온 글이라 기쁨의 교회 게시판에는 조금 다르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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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코드,무엇이 문제인가
"다빈치 코드가 정말 사실이예요?"
"예수님이 정말 결혼 하셨어요?"
책이 나온지 꽤 되었건만 사그러들지 않는 문의를 받았었다. 사실 이런 아류의 저작물들은 늘상 그 내용이 뻔해서 새삼 읽는 데 시간 투자하는 것이 여간 아깝지 않은 터, 그래서 그동안 애써 외면을 해왔는데, 올 년초 "정말 예수님의 자손이 있었나요?" 라는 한 통의 문자 메시지에 그만 내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결국 이 책을 잡아 들게 되었다. 책 읽을 시간이 저녁 밖에 없으므로 이틀에 나눠서 상,하권을 모두 정독했다. 짧은 시간에 가볍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이 책은 편집이 잘된 책이다. 또한 시나리오적 측면이 대단히 뛰어난 책이다. 아니 아예 저술 자체가 시나리오를 겨냥해서 출발된 책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단지 그것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 전략적인 기획과 마케팅
이 책은 한 마디로 시나리오다. 여기서 시나리오라 함은 문학적 쟝르상의 시나리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구상에서 저술, 출판, 홍보, 판매에 이르기 까지 하나의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해, 이제 앞으로 영화 제작까지 바라보는 고도의 상업적 시나리오 패키지 세트라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판매 마케팅을 보면 마치 소설이 아닌 다큐 혹은 히스토리물인 것 같은 홍보 전략이었음을 되뇌어 본다. 그런가 하면 내용면에서는 거의 실사 처리를 하고 있으면서도 소설이라는 쟝르에 교묘히 태워서 어떠한 민형사 상의 책임도 비껴나가고자 한 발상마저 엿보이는 지능적인 면도 있다.
[2] 시나리오 테크닉
두 권이나 되는 이 책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산문 소설이면서도 스킬에 있어서는 시나리오 보다도 더 빠른 템포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소설 전체가 단막 씬(scene)의 집합 구성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게다가 그 씬의 이동은 소단위의 잦은 클라이막스 주기를 활용하여 종횡무진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전혀 지루함을 못느끼는 착시를 동반한다. 씬의 이동시에는 반드시 의문과 미결을 지렛대로 삼기 때문에 책 전체에는 실제적인 내용이 없으면서도 다양한 것 같은 효과의 극대화를 꾀한다. 게다가 주오브젝트로서는 인간 뇌신경의 (단막적인) 무조건 반사에만 의존할 뿐인 '기호학'이라는 편협한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픽션과 논픽션을 교란시키는 것도 특기할 만한 테크닉이라면 테크닉이라 하겠다.
[3] 최후의 만찬
이 책이 무게 중심의 포스트로 활용하고 있는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은 독자들로 하여금 저자의 반전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밖에 없는 하나의 대형 그리드를 제공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독자는 의외로 단순하다. 처음 신뢰가 어렵지 일단 그 신뢰의 관문만 획득 당하고 나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이끌려 다니는데 이 책에서 그 신뢰에 한풀을 꺾이고 들어가는 주매개물이 바로 최후의 만찬이라는 얘기이다. 설명이 어렵나? 다시 한번 더 풀어서 말하면, 저자가 만약 레오나르도 대신 야코포 바싸노의 작품(Jacopo Bassano's Last Supper)을 싸들고 나왔어도 이렇듯 독자들이 집단 최면에 걸려들다시피 되었겠느냐는 말이다. 바싸노의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요한이 여자 모습이었다고 해도 그렇게 놀라줄건가?
바싸노의 최후의 만찬에 V자형 에너그램이 숨겨져 있어도 그렇게 몰입해줄 것이냐는 거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것은 회중에게 편만한 상식을 가지고 장난치는 게쉬탈트 놀이에 불과한 것이다.
('게쉬탈트' 참고 사설-「911테러에서 악마가 보였다는데」(2001.10.2)
[4] 레오나르도 다빈치
레오나르도가 책에서 말하는 비밀조직의 수장이었다는 신빙성은 그 어느 정설에도 없다. 저자가 말하는 (레오나르도 이름이 적힌)연판장 등의 증거는, 성경으로 비유를 하면, 하나의 오/위경과 같은 자료일 뿐이다. 예수님이 결혼을 했는지 등 따위의 논제는 책 「 다빈치 코드」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기자료들이 존재해왔다. 고대 중세를 거쳐서 이미 폐기처분 된 허구와 위서들이 하찮은 소설 따위에서 이렇게 재생되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코드 장난'이 아닐 수 없다. 레오나르도 자화상의 눈과 모나리자의 눈을 매칭해 놓고서 여장한 레오나르도가 바로 모나리자라는 부분에서는 마치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듯했다.
[5] 다빈치 작품으로 다빈치 코드 깨기
두 권씩이나 되는 책의 내용들을 일일이 이 지면에서 설명해 나갈 시간은 없고 앞서 말한 바 이 책의 주 그리드로 활용되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 최후의 만찬」만을 이용해서 이 책이 가지는 코드의 허구를 알아볼까 한다.
# 그림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은 대부분 영문서 원문을 번역해서 인용했으며 아울러 해당 원문도 첨부한다.
(1) 초기 복원
많은 사람들이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을 액자로 봐서 그런지 이것을 하나의 캔바스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원래 벽화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수도원의 식당 벽에 1493년부터1497년가지 약 4년에 걸쳐, 그러니깐 제1밀라노 시대에 그려진 벽화이다. 벽화이다보니 그 보존이 만만치가 않았다. 자연적인 풍화및 탈색 등으로 인해서 거듭 손상에 직면하다가 18세기 들어서 처음 복원 작업에 들어간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당시 복원작업은 후일에 계속해서 거듭되는 복원작업들의 잘못된 밑그림이 되고 말았다. 예컨대 1726년 Michelangelo Bellotti는 부식화 용제로 그 벽화를 닦아낸 후에 오일과 니스로 덮어버렸는가 하면 1770년대의 Giusseppe Mazza는 전임자들이 해놓은 것을 다 지우고는 다시 오일을 사용하여 원화보다 더 재채색을 하기도 했다.
EARLY RESTORATION Althought Leonardo's Last Supper had faced progressive deterioration since it had been completed, the earliest recorded restorations are in the eighteenth century. These restorations were based on the false premise that the painting was executed in an oil medium. Thus, Michelangelo Bellotti, in 1726, after cleaning the mural with caustic solvents, covered it with layers of oil and varnish. While in 1770, Giusseppe Mazza removed his predecessor's work and repainted much of the original again in oil. Understandably these treatments came under much fire and following restorers intervened by also repainting and trying to recreate Leonardo's original, rather than preserving it. A new stage in the Last Supper's history was reached in 1853 when Stefano Barezzi first tried to detach the painting from the wall. After failing to do so, he attempted to consolidate the painting by gluing the paint fragments to the base. Additionally, scientific studies of the mural were initiated at this time. However, the era of inept restorations ended only in the twentieth century, when a more responsible attitude developed. In 1903 Luigi Cavengahi began a careful study of the Last Supper using large-scale, detailed photographs as an aid. He established for the first time that the painting was executed in tempera, not oil. Between 1906 and 1908 he cleaned the paint surface and retouched missing areas. Although he removed grime and glue, he left a considerable amount of the repaint untouched. In 1924, restorer, Oreste Silvestri, further removed grime from the painting. On August 15, 1943, a bomb nearly destroyed the refectory, but the northern wall where the painting resides was braced and sandbagged as a precaution, and thus survived. However, for one year the painting had to face harsh conditions since the refectory was not repaired immediately. In 1947-1949, Mauro Pelliccioli proceeded to give the painting another cleaning and reintegration necessitated by its mildewed condition. The restorer anchored the paint using a shellac as a fixative, rather than dirt-collecting, water-soluble glue. He then cleaned the painting and lightened the tonality of the mural. Without his efforts, even less of the Last Supper would remain today. RECENT RESTORATION The most recent restoration of Leonardo's Last Supper was completed in May 1999. Work on this most recent restoration began in 1979 to repair areas where paint had flaked away, and quickly expanded to uncover fragments of the original painting covered by repainting from the above "early restorations." Pinin Brambilla Barcilon has conducted this latest restoration of Leonardo's Last Supper under the auspices of Milan's Superintendent for Artistic and Historic Heritage. She is a renowned restoration artist who made use of various new technologies to bring life back into Leonardo's masterpiece. Brambilla's task was first and foremost to stop further deterioration. Chemical analysis suggested that the over-painting which remained, was still eating away at Leonardo's original paint, and areas that were flaking away were taking parts of Leonardo's work with it as well. So, she decided the most pressing project was to remove everything that had been added after Leonardo finished the painting in 1498. The restoration therefore demanded accuracy at the micron level, and attention to the smallest details. Microscopic pictures were utilized to magnify most areas of the painting. Such pictures demonstrated how mold, glue, repaint, and smog collected on the painting while infrared reflectoscopy enabled restorers to see the artist's original painting under layers of paint. Small diameter coring surveys also were performed. Samples taken from the corings were analyzed in laboratories to provide information on colors and materials utilized by Da Vinci. Miniature TV cameras inserted in the boreholes also provided information on the cracks and cavities. Sonar and radar surveys were also taken to provide information about the elastic and stru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masonry and base that the painting resides upon. Therefore using the above technologically advanced techniques for analysis and employing the use of solvents to remove multiple layers, Pinin Brambilla faced an extremely slow and meticulous process. Often, only an area the size of a postage stamp was cleaned each day. The twenty year project has proved to be quite successful however. Once referring to Leonardo's Last Supper as a sick patient, Brambilla has proclaimed that she and her colleagues have been able to give back a reading of the dimensions, "of the expressive and chromatic intensity that we thought was lost forever." Brambilla, besides letting the original colors come through, added some basic color to blank areas in a way that the addition cannot be confused by the viewer with the original color. In certain areas, blank spots were left and not even painted over. Most importantly, the restorer believes that the luminosity of the original painting has been regained. Leonardo's Last Supper was reopened to the public in May 1999. The painting is now preserved by a sophisticated air filtration system, moistured monitored environment, and dust-filtering chambers. Visitors must make reservations and groups are limited to 25 people for viewing times of only 15 minutes. CONTROVERSY The most recent restoration, which took more than five times as long as Leonardo's execution of the painting, has been trumpeted by many but also condemned by many in the art world. Critics, chiefly American and English, call Brambilla's removal of earlier restorations unnecessary and destructive, erasing fragments that might have been faithful to the original. James Beck, Art History Professor at Columbia University in New York, has been a prominent critic of the restoration. He has called it 18 to 20 percent Leonardo, and 80% the work of the restorer. Beck maintains that the areas that have been painted by Brambilla's watercolor essentially repaints the masterpiece. He asserts that the painting does not represent a conservation of what remains of Da Vinci's original, but represents a repaiting of a work that doesn't even have an echo of the past. Even Martin Kemp, Professor of History at Oxford and world expert on Leonardo, questions Brambilla's decision to fill in some of the gaps of the painting with similar tones of water-colors. Although there are a number of critics, many have praised Brambilla's work. This is a topic to be debated in years and decades to come since it will never be certain as to whether the current state of the painting remains faithful to Leonardo Da Vinci's masterpiece or not. |
이후의 복원가들은 레오나르도의 원화를 그대로 보존하기 보다는 재채색과 재창조하려 함으로써 이 작품에 오히려 위해를 가했다.
초기 복원작업이 오일미디엄 방식이었던 것에 반해 기법상의 새로운 장은 Stefano Barezzi가 벽으로부터 그 그림을(페인트 부분) 떼어내는 첫 시도로써 1853년에 도래됐다. 그러나 그 작업이 실패한 이후에 그는 바닥에 페인트 조각을 접착시키는 병합법을 시도했는데, 벽화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는 이때로부터 처음 시도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서투른 방법의 복원 시대는 더 신뢰할만한 방식이 개발된 20세기로써 끝이 난다.
1903년 Luigi Cavengahi은 최후의 만찬을 큰 사진으로 확대하여 참조함으로써 주의 깊은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오일이 아닌 템페라로 처리하는 기술을 최초로 확립했다. 1906년과 1908년 사이 그는 그림 표면을 닦아내고 누락된 면들을 덧칠했다. 그는 이물질과 접착제를 제거함으로써 꽤 많은 양의 본래 형태를 남겼다. 1924년 복원가 Oreste Silvestr는 벽화로부터 이물질을 한층 더 제거했다.
여기에다가 설상 가상으로,
1943년 8월 15일, 폭탄 한발이 그 수도원 근방에 떨어졌다. 그러나 북쪽 벽은 미리 준비된 보호용 모래주머니들에 의해 지탱 되어, 어쨌든 그 벽화는 살아남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수도원이 즉시로 수리되지 않은 채 약 1년 동안의 좋지 않은 환경에 방치되는 바람에 원화의 손상은 극심해졌던 것이다.
1947~1949년, Mauro Pelliccioli은 그 벽화에 또 한번의 클리닝 처리를 했고 곰팡이 같은 악조건으로 인해 재복원이 불가피 했다. 그 복원가는 먼지수집과 용해접착제를 사용하기 보다는 쉘락(니스의 원료)을 픽사티브(고정제)로 사용하여 접착을 시켰다. 그런 다음 페인트를 깨끗이 하고 벽화의 색조를 밝게 했다. 그의 수고 없이는 최후의 만찬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2) 최근 복원
레오나르도가 그린 최후의 만찬의 가장 최근 복원은 1999년 5월에 완료된 바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이 복원에서는 떨어진 조각 부분을 고치는 작업을 1979년에 시작하였고, 그리고는 ‘초기 복원 시대‘ 이래로부터 덮혀 온 페인팅 조각들을 벗기는 작업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Pinin Brambilla Barcilon은 ‘예술,역사 유산 승계 프로젝트‘를 위한 밀라노 감독의 주도 아래 이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 최종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그녀는 레오나르도의 이 걸작을 소생시킬 여러 가지 새로운 기술을 사용한 명성있는 복원 예술가로 손꼽힌다.
Brambilla의 기술은 더 이상의 원화 탈색을 중단 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화학 분석가들은 남아있는 덧칠은 레오나르도의 원화를 먹어들어간 것까지였고 그리고 파편으로 떨어져 나간 부분들이 레오나르도가 작업한 부분에 속한다는 분석을 제공했다. 그래서 그녀는 레오나르도가 작업을 끝마친 1498년 이후로 추가된 모든 것들을 제거하는 모스트 프레싱프로젝트를 결정했다.
그 복원은 아주 미세한 단위의 정밀도와 극히 작은 상세한 것들에 대한 주의가 요구 되었다. 현미경으로 확대된 상들은 그림 대부분의 부위를 확대되는 데 이용되었다. 적외선 반사 장치로 복원가들이 칠 밑 겹의 원화를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벽화위에 붙은 주형, 접착제, 재칠 그리고 기체 부분까지 모두 드러났다. 작은 지름의 구경을 파내는 작업(coring)이 수행되었다. 그곳에서 채취된 샘플은 다빈치 재료 색채 정보 실험소에서 분석되었다. 시추공 안에 넣은 소형 TV카메라는 균열과 구경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 음파 탐지와 레이더 조사는 석조의 탄력 및 구조적 특성과 페인트가 붙은 바닥에 관한 정보도 주었다.
분석에 있어서는 가장 진보적인 기술을 사용하였고 여러 겹을 지우는데 솔벤트 사용 기법이 활용되었는데...Pinin Brambilla 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지극꼼하게 작업에 임했다. 하루 작업이라고 해봐야 우표 크기만한 정도만 작업했을 정도로 세밀하게 복원에 임했다고 한다. 그 20년간의 프로젝트는 어쨌든 아주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은 아픈 환자처럼,.. Brambilla 와 그녀의 팀들이 벽화의 체적 내용, 곧 '우리가 영원히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원화의 표현과 색채 강도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단언했다. Brambilla 는 오리지날 컬러를 볼 수 있는 뷰어 장치로써 공백 부분에 기본 컬러를 메우는 방법을 통해 오리지날 컬러를 복원하기로 결정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공백 부분이 남겨졌는가 하면 그 이외 부분도 칠해졌다.
여기서 대단히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그 모든 것을 오리지날 페인팅이 복구되는 발광 부위로 믿었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은 1999년 5월에 일반인들에게 다시 공개됐다. 그 벽화는 현재 정교한 공기 청정기 및 습기 감지 장치 그리고 방 내부의 먼지-필터링 시스템에 의해 보존되어 지켜지고 있다. 방문객들은 최대 25명이 한 그룹을 지어 단 15분씩만을 관람하게 되어 있다.
(3) 논란
다섯 번 이상 있었던 최근의 복원은 미술계에서 레오나르도의 그 작품 자체 만큼이나 많은 찬사와 비난을 받고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 저명한 비평가들은 Brambilla 의 초기 복원의 제거 작업은 오리지날에 해당할지도 모르는 프러그까지 지워버린 무익하고 파괴적인 것이다라고 평한다. 제임스 벡이라는 뉴욕 컬럼비아대 미술사 교수는 복원 비평의 탁월한 사람이다. 그는 네오나르도 부분은 18~20%뿐이고 나머지 80%는 복원가들 것이라고 말한다.
Beck은 Brambilla 의 watercolor 에 의해 그려진 그 부분들은 본질적으로 그 마스터피스에 재칠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그 페인팅은 다빈치의 원작을 남기는 보존 작업으로써 묘사한 게 아니라, 원화 자체와는 관계없는 리페인팅으로써의 묘사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옥스퍼드대 교수이자 세계적인 레오나르도 전문가 Martin Kemp조차 Brambilla의 결정은 워터컬러 톤에 근사한 페인팅으로 몇몇 갭들을 채운 것에 의문을 가졌다.
많은 평론가들에 의하여 Brambilla 작업이 칭송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으로 손색없는 그림인지 아닌지에 관한 논제로서 확실시 되지 않은 체 10여년에 걸쳐 논쟁이 되고 있다.
[6] 최후의 만찬이란 없다.
이상 벽화의 기술 자료 원문에서 살핀 바와 같이 고작해야 원작자의 10여 퍼센트만 남은 그림을 가지고서 '코드'를 운운한다는 것은 실로 웃음꺼리요, 사기극이 아닐 수 없다. 「다빈치 코드」가 주장하는 '익명의 손'이나 '여성으로서의 요한'도 아래 이미지 비교에서 계속 밝히겠지만, 우선 우리가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것은 '리페인팅(repainting)'이냐 '리스토어링(restoring)'이냐의 차이다.
후자는 원래 있던 자리에 새것을 채우는 것에 불과하지만, 전자의 리페인팅은 완전히 아예 싹 다시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제아무리 좋은 기술 제아무리 섬세한 기술과 과학을 동원했다 하더라도 현재의 최후의 만찬이 레오나르도의 원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탈리아 국가적으로 보나 미술 학계 자체로 보나 그 그림을 매개로 하는 상술에 불과할 따름이다.
[7] 이미지 대조
가장 심하게 변형된 부위는 예수님 부위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다시피 예수님의 풍체뿐만 아니라 입술, 식탁 위의 메뉴까지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요한의 성(性)의 바뀜이라든가 전체적인 색감의 변조는 「최후의 만찬」를 다빈치의 마스터피스 자리에서 끌어내린 결과를 초래했다고 본다.
「다빈치 코드」는 이 복원으로써 본래의 레오나르도의 원화를 찾았다고 주장 하지만 어떠한 신빙성도 없다. 이미 위의 기술적인 원문에서 공정하게 언급되었다시피 작금 현세에 와서 레오나르도의 진짜 본래 원화는 사실상 찾을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설령, 첨단 기구를 이용해서 평면적인 라인은 투사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고 그 투사 장치가 요한의 가슴 볼륨까지 투사했겠느냐는 얘기다. 가슴의 볼륨은 평면 투사로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성질의 표현 부위가 결코 아니다.
여러분이 당대의 복원가라고 가정해보자 원화의 라인을 추적해가다보면 명백한 원화 라인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것이 100이면 100다 찾아지겠냐는 것이다. 가령 한 두 부분에서 이 라인이 다빈치의 것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부위를 맞닥뜨리면 어쩔텐가. 무엇이든 한 라인은 택일을 해야하는 데, 또 그들이 실제로 택일을 해낸 그림이 오늘날의 이 그림인데,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처럼 신빙성이 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독자들의 신뢰를 따고 들어가는 이 포스트에 대해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이거다!'라는 반전에 우선 성공을 하고 아울러 그 드라이브에 난잡한 오/위경을 태우는 절묘함의 극치인 것이다.
그러나 이상에서 밝혔듯이 1493년 초기 원화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전세계가 레오나르도의 벽화를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봐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원화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찾을 길이 없건만 한낱 위경이나 비밀문서 따위일까 보냐! 이미 지난 사설「트루먼쇼와 매트릭스」(2002.3.3)에서 언급했다시피 이런 류의 저작물들은 고도의 매체 전술에 불과하다.
복원 전 |
복원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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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다문 입술 -전체적으로 풍체가 넓다. -접시에 음식이 있다. |
-예수님 입이 열려있다. -전체적으로 풍체가 날씬하다. -접시의 음식이 없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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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전 요한은 남자 |
-복원 후 性이 바뀌어 여자가 돼버린 요한 -얼굴만 변한 게 아니라, 가슴도 부풀어 오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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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전 컬러 톤 |
복원 후 완전히 달라진 컬러 톤 |
바돌로매 |
야고보2 |
안드레 |
유다 |
베드로 |
요한 |
예수님 |
도마 |
야고보 |
빌립 |
마태 |
다대오 |
시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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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결론
트루먼쇼나 메트릭스 이후에 거듭 생산되는 이러한 방식의 접근은 이젠 어엿한 쟝르화로 자리잡은 듯하다.
특히 One이 니오(Neo)의, AMON LISA가 모나리자(Monalisa)의 숨겨진 코드라는 등의 병적일 정도로 에너그램에 집착하는 이들 쟝르의 생리적 특성은 「다빈치 코드」나 「메트릭스」 모두 동일하다.
「다빈치 코드」에서 예수의 후손으로 나오는 '메로빙거' 는 「메트릭스」에서 '메로빈지언' 으로 탈바꿈 해서 등장하고(둘다 프랑스인이며 메시야 계보로 등장) 그런가하면 또 다빈치 코드가 '예수는 죽은 후 부활하지 않고 대신 후손을 남겼다' 라는 고대 이단의 색채를 마치 정설인양 그대로 인용하고 있듯이 메트릭스 상에서의 메시야인 니오(Neo)는 죽음으로써 끝을 맺는다. 다시 부활해서 살만도 한데 죽음으로써 끝을 맺는다. 게다가 흥행 미국 영화는 전례상 반드시 해피엔딩이 아니면 흥행에 실패할 위험이 있는데도 유독 메시야 Neo를 죽임으로써 끝을 맺는다.
무엇이 무엇을 카피했는지 아니면 그들 모두가 하나 같이 특정 고대 이단적 색채관을 그대로 추종하는 크리티브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새삼 새로울 것이 없는 80여권에 달하는 복음 위경들이 현대에 와서 마치 새로운 발굴인양 '문화'라는 중무장을 하고 복원 돼 쏟아져 나오는 현상은 범상치가 않음에 틀림이 없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오늘날의 복음서는 단 4권으로 전해내려 오지만 1~2세기 언저리에는 80권 아니, 80권만 되었겠는가, 셀 수도 없이 많은 예수의 전기서들이 쏟아져 나왔을 텐데, 그게 오늘 날까지 전해내려 왔다면?, 그리스도교의 판도는 아마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 「다빈치 코드」가 스스로 자인 하듯이 카톨릭이라는 하나님의 역사적 장치는 이것들을 모두 죽이고 소각했다. 당대 神正의 의미로 봤을 때 어쩌면 의인도 죽어나갔을런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의인들뿐만 아니라, 일고의 가치도 없는 사악한 오/위경들도 모두 죽임 당하고 불태워졌다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 경륜 아래서의 역사적 사실 구도이다.
神正, 그렇다고 하나님의 의에 손상이 오는가? 그런가?
결코 그렇지 않다.
단지, 그분의 섭리와 경륜의 경계라고나 할까.